닫기

[강성학 칼럼] 한반도는 헤겔(Hegel)과 마르크스(Marx)의 최후 결전장이 아닐까?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koreanwave.asiatoday.co.kr/kn/view.php?key=20240904010002702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4. 09. 04. 17:33

강성학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프랑스 대혁명 200주년이 되는 1989년 여름 프란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는 '역사의 종말'을 선언하면서 냉전의 종식을 알렸다. 역사의 종말은 본질적으로 헤겔의 역사철학에 대한 알렉산드로 꼬제프(Alexandre Kojeve)의 해석을 20세기 황혼기에 적용시킨 것이다. 꼬제프는 헤겔의 역사철학 속에서 '역사의 종말'이란 개념을 재발견한 헤겔주의자였다. 이 개념은 역사란 그 자체의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 자신의 숨겨진 비밀스러운 계획을 통해 보편적 자유와 합리성을 구현하는 국가제도로 인간들을 안내한다는 것이다. 19세기에 마르크스가 공산주의를 역사의 종말과 동일시했다면 20세기의 꼬제프는 그 원칙들을 20세기에만 성취되고 있는 보편적이고 동질적인 국가라고 불렀다. 그것은 당시 자유주의적 민족국가를 의미했다.

꼬제프는 1806년에 역사가 끝났다고 선언한 헤겔을 부활시키려고 했다. 이 해에 헤겔은 예나전투에서 나폴레옹이 프러시아의 군주제를 패배시키는 것을 목격했고, 프랑스 대혁명의 이상이 승리하는 것을 보았으며, 그리고 자유와 평등의 원칙을 실현하는 국가의 임박한 보편화를 보았다. 즉, 헤겔은 나폴레옹 전쟁, 특히 예나의 전투에서 울린 나폴레옹의 승전소리는 역사가 완성되었거나 아니면 이미 완성되었다고 감지했던 것이다. 1806년 이후 노예제도와 노예무역의 폐지, 노동자나 여자, 혹은 흑인 등 소수민들에게 참정권의 확대와 같은 실현되어야 할 과업이 많았지만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제 원칙은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었다.

또한 꼬제프는 1806년 이후 혼란한 사건들이 많았지만 본질적으로 헤겔이 옳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역사의 종말 이후의 삶은 자유와 평등이 원칙적으로 실현된 미국식의 삶으로 마르크스가 꿈꾸던 계급 없는 사회의 본질적 성취를 대변한다고 내다보았다.

19세기는 역사철학의 시대였다. 18세기가 철학자들의 자연법에 기초한 보편적 진리의 탐구 시대였다면 19세기는 역사발전의 법칙을 발견하려는 시대였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헤겔과 마르크스였다. 연대순으로 헤겔 다음에 마르크스가 탄생했다. 세상의 마르크시스트들은 헤겔의 민족국가 다음 단계에 계급 없는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할 것으로 믿었다. 아니, 그렇게 되길 소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들의 기대를 배신하고, 아니 그들의 오류를 깨닫게 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마르크스 다음에 헤겔이 왔다. 공산주의 세계의 몰락과 함께 "역사의 종말"을 우리에게 소개한 프란시스 후쿠야마를 통해 헤겔이 새롭게 등장했고, 그러고 나서 해방된 체코슬로바키아의 대통령 바클라프 하벨(Vaclav Havel)은 미국 의회의 합동회의 연설에서 최근 역사의 교훈은 마르크시스트들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의식이 존재를 앞선다(Consciousness precedes Being)"고 천명하여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후쿠야마와 하벨은 마르크스에 대한 헤겔의 승리를 확인했다. 그들은 마르크스에 대한 헤겔의 뒤늦은 승리를 확인해 줄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가 헤겔을 거꾸로 세웠다고 말함으로써 의미하는 것을 보다 선명하게 내다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벨이 의미했던 것은 사실상 헤겔이 그의 정당한 지위에 복귀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마르크스가 거꾸로 세운 헤겔의 역사철학의 체계는 "역사"의 아이디어에 집중되었다.

우리는 칸트의 혁명에 관해서 말한다. 그는 사물이 아니라 인간을 객관적 현실의 중심에 놓았다. 그러나 역사를 객관적 현실의 중심으로 만든 헤겔의 혁명에 관해서는 별로 얘기하지 않는다. 헤겔이 했던 것은 역사에서 "의미"를 발견했던 것이다. 이 역사의 의미는 시시한 사건에서 항상 발견되는 시시한 의미가 아니라 역사의 전체를 위한 거대한 형이상학적이고 목적론적인 의미였다.

그 의미는 그가 이성이라고 부르는 곳에 있다. 헤겔에겐 이성이 주권자이다. 그러므로 세계의 역사는 우리에게 합리적 과정을 제시한다. 과거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이나 마음의 본질에서 이성을 찾았다. 그러나 헤겔은 역사에서 그것을 찾았다. 그것은 대문자의 이성(Reason)이다. 물론 독일어에서 모든 명사는 대문자로 표기하지만 그것은 우주의 이성, 즉 역사를 의미 있게 하는 이성이다. 이것은 헤겔이 역사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이 합리적이라고 믿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성은 부분적으로만 실현되고 실재는 오직 부분적으로만 합리적이다. 만일 이성이 이미 완전히 실현된다면 그때는 역사가 끝날 것이다.

합리적인 것이 점차로 역사 속에서 스스로 실현되는 것은 역사의 변증법, 즉 역사의 역동성을 통해서다. 이 변증법은 역사의 이중적 의미에 달려있다. 경험적이고 실재적인 역사와 이성, 즉 합리적인 영역에 침투된 역사가 그것이다. 헤겔은 실제적인 역사의 현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합리적인 역사가 등장하는 것은 오직 실제적인 역사를 통해서이다. 인간들이 자기들의 일상적 삶에서 경험하는 실제적인 역사는 비이성, 즉 폭력과 악과 타락으로 가득하다. 인간들이 그들의 욕구, 열정, 이익, 개성과 재능에서 행동하는 곳은 바로 이곳이다.

이성이 등장하는 것은 그들의 특수한 욕구의 만족을 추구하는 인간들에 의한 바로 이 수단에 의해서이다. 이것이 바로 이성의 "비밀스러운 계획(the Cunning of Reason)"이다. 자기 자신의 열정과 이익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개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자기의 목적을 넘어서는 자신들의 의식이나 계획에 없던 결과들을 생산한다. 세계사적인 개인들(world-historical individuals) 같은 어떤 사람들은 역사의 과정을 진전시키고 보다 직접적이고 드라마틱하게 이성의 등장을 가속화한다.

헤겔은 칸트처럼 자유의 진화에 관해서 말하지 않고 자유의식(the consciousness of freedom)의 진화에 관해서 말했다. 이성이 역사에서 절대적인 것과 꼭 마찬가지로 자유에는 의식이 절대적이다.

헤겔이 1831년 61세로 사망한 뒤 17년째 되는 1848년 30세의 마르크스가 엥겔스와 함께 내놓은 <공산당 선언>(The Communist Manifesto)은 헤겔의 역사철학과는 아주 대조적이었다. 그것은 선언이기보다는 행동을 촉구하는 격문이었다. 역사의 원동력으로 계급투쟁이 이성을 대체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모든 기존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들의 역사였다고 단정되었다. 역사는 헤겔에게 만큼이나 마르크스에게도 중대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에게도 역사는 그 자체의 거부할 수 없는 목적론적 필연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의 원동력은 전적으로 달랐다. 헤겔의 역사가 우주적 이성과 자유의 정신에 의해서 운전이 되는 반면에 마르크스의 역사는 물질적 생산과 계급투쟁에 의해서 움직인다. 따라서 헤겔과는 달리, 마르크스에게는 역사의 이동을 서두르는 영웅들, 즉 세계사적인 개인들이 없다. 그의 계획에 개인들은 없고 오직 계급만 있으며 무엇보다도 그에게는 "세계사적"인 프롤레타리아 계급만 있을 뿐이다.

마르크시즘을 서술하기 위해서 "역사적 유물론(Historical Materialism)"이라고 부른 것은 엥겔스(Engels)였다. 실제로, 그는 마르크스가 했던 것을 정확하게 서술했다. 헤겔주의가 "역사적 관념론(Historical Idealism)"이라고 특징지을 수 있다면 마르크시즘은 적당하게 역사적 유물론이라고 불릴 수 있다. 헤겔의 관념론을 거부하는 데 있어서 마르크스는 역사의 추진력으로서 이성뿐만 아니라 자유까지 배격했다.

그 결과 마르크스의 의식의 유물론적 이론은 부르주아 사회와 문화의 산물인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심각한 문제를 창조했다. 어떻게 그들은 자신들의 계급 이익에 그렇게도 적대적인 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었을까? 마르크시스트들은 잉여가치설이나, 프롤레타리아의 빈곤화나, 계급투쟁과 혁명에 대한 집착이나 혹은 인간의 고통에 대한 연민 때문이 아니라 마르크시즘이 미래를 정복한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신봉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성공의 보장만큼 유혹적인 것은 없다. 만일 성공이 역사에 의해서 보장된다면 왜 구태여 공산주의를 위해서 싸우는가? 만일 프롤레타리아가 그것의 존재만으로 그 자체가 혁명을 가져온다면 왜 공산당을 창설하고 또 참여하는가? 권력의 욕구에 사로잡힌 자들은 다가올 혁명의 골든타임을 기다리지 못하고 가상적 역사의 법칙을 믿고 가장 효율적인 정치적 마차에 편승하는 도박에 자신의 운명을 걸기 때문이다.

유물론과 역사의 결정론의 결합으로 마르크시즘은 치명적으로 반인간적이 되었다. 그것은 물질적인 조건과 계급관계와는 독립적인 인간의 의식, 즉 정신을 부인한다. 그것은 역사의 과정을 형성할 능력이 있는 인간의 의지와 결의를 부인한다. 그것은 계급으로 축소되지 않는 개성을 부인한다. 그것은 아이디어와 자유의 현실을 부인한다. 그리고 그것은 정통적 종교의 의미에서나 헤겔의 철학적 의미에서 인간의 정신성을 부인한다.

그래서 후대의 네오-마르크시스트들이 들이대는 "인본주의적 마르크스(humanistic Marx)"는 하나의 모순어법이다. 사실상 그것은 마르크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중대한 모욕이다. 왜냐하면 그가 그렇게 열심히 달성하려고 했던 모든 것이 허위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의 박물관에 박제된 채 전시되어 있는 것을 감상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에 중국과 베트남, 그리고 한반도에는 아직도 그런 낡은 공산주의에 뿌리를 둔 공산정권들이 유물로 남아있다. 그들의 본질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동양의 전통적 전제정치이다. 특히, 북한은 김정은의 일인지배의 전제정치로 인해 남북대결이 냉전의 잔재처럼 남아있다. 아니, 21세기에는 미중 간의 신(新)냉전시대가 형성되면서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핵무기로 남한을 그 어느 때보다 더 실존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그리하여 한반도는 헤겔과 마르크스 역사철학의 마지막 결전장이 되어버렸다. 북한 주도로 한반도가 통일된다면 그것은 엉뚱한 마르크스의 승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헤겔과 마르크스 간의 역사적 심판은 한반도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그러므로 남한의 자본주의체제가 북한의 공산주의체제에 패배하여 한반도 전체가 공산주의 사회가 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것은 헤겔식으로 말해서, 남한의 보편적이고 동질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이 세계사가 증명한 '역사 그 자체'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