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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인사이트] 200억 넘는 ‘나인원 한남’이 고급주택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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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현 기자

승인 : 2025. 02. 04. 13:30

고급주택으로 분류되면 취득세 중과…일반세율에 8% 가산
면적 기준 피하려 '꼼수' 시공 판쳐…'고무줄 과세' 속출
시설 규제에 다양한 주택 보급 차질 우려
전문가들 “50년된 낡은 제도 손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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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75년부터 본격 시행된 '고급주택'에 대한 취득세 중과 규제가 현실과 맞지 않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의 대표 최고가 아파트인 서울 용산구 한남동 '나인원 한남' 모습. /연합뉴스
#. 서울 강남구 청담동 '더펜트하우스 청담'(PH129) 전용면적 273.96㎡형은 시세가 150억원이 넘어도 '고급주택'이 아닌 일반주택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취득세는 일반세율 3%를 적용해 4억5000만원만 내면 된다. 취득세가 중과되는 고급주택 면적 기준(복층 전용면적 274㎡)을 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서울 근교 시세 45억원에 연면적 100평(331㎡ 초과)짜리 2층 단독주택은 고급주택으로 분류해 취득세 4억9500만원(11%)을 내야 한다. 더 비싼 집이 세금은 덜 내는 것이다.

50년 전에 만든 고급주택에 대한 취득세 부과 기준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과세 형평성 문제를 야기하고 다양한 주거시설 보급도 가로막고 있는 낡은 제도를 시대 변화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세심판원 "나인원 한남, 고급주택 아냐…취득세 중과 부당"

최근 조세심판원의 고급주택에 대한 취득세 중과 취소 결정은 면적 기준의 불합리성을 여실히 보여줬다.

조세심판원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 '나인원 한남' 시행사인 대신프라퍼티가 지난해 말 서울시를 상대로 "취득세 2000억원 중과세는 부당하다"며 제기한 심판 청구를 받아들였다. 서울시가 문제 삼은 주택들이 지방세법상의 '고급주택'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지방자치단체가 취득세를 중과한 것은 잘못된 행정이라고 주장한 시행사 측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번 결정으로 나인원 한남 소유자들은 취득세 중과를 면하게 됐다.

고급주택 중과세 제도는 1975년 1월부터 본격 시행됐다. 수도권으로 쏠리는 고급주택 수요를 억제하고, 사치성 재산 소비를 차단하려는 목적이었다.

고급주택 취득세 중과 대상은 금액과 면적, 두 가지를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경우 시가표준액(주택 공시가격이 있는 경우 공시가격)이 취득 당시 9억원을 넘으면서 주거전용면적이 245㎡(복층은 274㎡)를 초과하면 고급주택으로 분류한다.

단독주택은 시가표준액(공시가격) 9억원이 넘으면서 연면적 331㎡, 대지면적 662㎡를 초과하거나 엘리베이터(200㎏ 초과, 3인용 이하 제외)가 설치됐다면 고급주택으로 규정한다. 시가표준액이나 면적과 상관없이 에스컬레이터 또는 67㎡ 이상 수영장이 있는 주거시설도 고급주택으로 묶인다.

고급주택으로 분류되면 일반세율(2.8~4%)에 8%를 추가한 10.8~12%의 세율로 취득세를 내야 한다. 일반주택의 경우에도 다주택에 대해 취득세가 중과되고 있어 주택을 두 채 보유한 사람이 고급주택을 한 채 더 사면 최대 20% 취득세를 납부해야 하는 것이다. 서울의 대표 최고가 아파트인 나인원 한남이 이 같은 '고급주택' 기준을 아슬하게 피한 이유다.

◇화화주택 '더펜트하우스 청담' 등도 취득세 중과 피해

앞서 서울시는 지난 2023년 나인원 한남 전체 344가구 중 듀플렉스형 및 펜트하우스 293㎡(전용면적 244㎡) 124가구와 복층형 334㎡(전용면적 273㎡) 43가구 등 167가구가 지방세법상 고급주택에 해당한다며 취득세 중과세를 부과했다. 지하에 설치된 세대별 지하 캐비넷 창고와 엘리베이터홀, 차고지형 지하주차장을 공용시설이 아닌 입주자들의 전용공간으로 간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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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연예인 많이 살고 있는 아파트로 알려진 서울 강남구 청담동 '더펜트하우스 청담'(PH129) 모습./연합뉴스
과세 추징액은 원시취득자인 사업주체(시행사) 800억원, 승계취득자인 수분양자(입주자) 1200억원 등 무려 2000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조세심판원은 일부 공용면적을 주거전용면적으로 본 서울시의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방세 법령에서 공용면적에 대한 별도의 정의가 없고, 공부(등기부등본·건축물관리대장 등)상 주차장이나 창고가 공용면적이라는 등을 이유로 취득세 중과를 취소하라고 결정했다.

조세심판원은 지난해 7월에도 강남구 청담동 더펜트하우스 청담(PH129) 시행사가 "서울시와 강남구가 건물 내부 발코니와 세대별 지하창고 등을 문제삼아 부과한 취득세 230억원은 과도하다"며 제기한 취득세 중과 불복 조세 심판 청구에서 중과 취소 결정을 내렸다.

◇A4용지 한 장 크기 차이로 고급주택 규제 벗어나…'꼼수' 시공·분양 판쳐

이렇다 보니 공동주택의 경우 전용면적을 245㎡(복층은 274㎡)보다 살짝 모자라게 지어 취득세 중과를 피하는 '꼼수'가 판을 치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취득세 중과를 피할 목적으로 호화주택을 고급주택 면적 기준에 약간 못미치게 짓고 공용면적에 각 세대 전속 주차장이나 창고를 별도 제공하는 식으로 분양하는 게 관행이 되다시피 했다. 서울 한남동과 청담동 같은 부촌 지역에 공급된 초고가 주택 단지에서 전용 244㎡형이 유난히 많은 이유다.

실제로 지난해 공시가격 1위를 차지한데다 유명 연예인 많이 거주하는 아파트로 알려진 청담동 더펜트하우스 청담(PH129)는 332㎡ 복층형의 전용면적이 273.96㎡로 고급주택 기준에서 불과 0.04㎡ 모자란다. 한남동 나인원 한남 역시 대형 전용면적이 244.34(단층)∼273.94(복층)㎡로 고급주택 기준을 A4용지 한 장 크기 차이로 벗어났다.

지난해 역대 최고 분양가(3.3㎡당 1억1500만원)를 기록한 광진구 광장동 '포제스 한강'은 단층형 가운데 면적이 가장 큰 가구가 244.99㎡다. 고급주택 기준을 단 0.01㎡ 차이로 피했다.

면적 기준으로 고급주택 취득세를 과세하다 보니 역설적 상황도 적지 않게 생긴다. 서울과 지방의 집값 차이가 큰데도 단순히 면적이 넓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방이나 수도권 외곽 단독주택이 중과세 폭탄을 맞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예컨대 시가표준액 10억원에 연면적 332㎡인 경기도 외곽 전원주택은 고급주택으로 묶여 취득세 중과를 적용받는 반면, 시세가 200억원이라도 연면적 331㎡인 서울 단독주택은 일반주택으로 분류돼 세금 중과를 피하는 식이다. '고무줄 과세'라는 불만과 조세 저항이 커질 수밖에 없게 됐다.

◇엘리베이트 설치하면 고급주택…현실과 동떨어진 고급주택 기준

엘리베이터 등 시설 규정 때문에 부당한 세금 부과 처분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수도권 외곽에 작게 집을 지어도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거나 수영장을 만들면 고급주택으로 묶이기 때문이다. 거동이 불편한 아내와 함께 서울 근교에 2층짜리 단독주택을 짓고 텃밭을 가꾸려던 은퇴자들 사이에서 "100억짜리 고가 주택도 아니고, 교외 단독주택에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이유로 세금을 더 내는 게 말이 되느냐"는 불만이 쏟아지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고급주택 규제 제도가 시행된 1975년보다 대한민국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10배 이상 커졌고 국민의 주거 눈높이도 올라갔지만, 50년 전 규제 기준가 창의적이고 다양한 주택 보급을 가로막고 있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견해다.

'9억원'으로 정해진 고급주택 가액 기준도 현실과 동떨어져 매우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많다. 고급주택 기준으로 삼는 시가표준액(공시가격)은 2006년 6억원에서 2021년에 9억원으로 50% 상향됐다. 하지만 현재 집값 수준을 감안하면 기준 가격이 너무 낮아 유명무실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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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가 아파트 대명사로 불리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더힐'모습./연합뉴스
값비싼 아파트는 면적 차이로 고급주택에서 제외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택에는 취득세가 중과되는 조세 형평성 논란마저 낳고 있다. 따라서 고급주택의 가격 기준을 높일 때가 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9억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KB국민은행 조사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은 작년 말 기준 9억8333만원으로 9억원을 돌파했고, 평균 매매가격은 12억7274만원에 달했다. 중위가격이란 모든 주택을 가격 순으로 나열했을 때 한가운데에 위치하는 중간값을 말한다. 지난해 서울 공동주택의 14%에 해당하는 39만6000가구의 평균 공시가격이 9억원을 넘어섰다.

◇"면적 기준은 없애고 가액은 대폭 높여야"

고급주택 취득세 중과 기준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고급주택 가액 기준(현행 9억원)은 높이고, 면적 기준은 없앨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행 부동산 양도소득세처럼 가격만을 기준으로 고급주택 여부를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양도세의 경우 과거에는 면적 기준이 있었지만 가격이 비싼데도 면적이 작아 과세 대상에서 제외되는 문제(과세 불형평성)와 양도 세제의 정책 효과 제고 등을 위해 2003년 폐지됐다. 명칭도 고급주택 대신 '고가주택'으로 변경했다. 이후 양도세 가격 기준은 2008년 6원에서 9억원으로 상향 조정된 뒤 2022년 다시 12억원으로 높여졌다. 물가와 집값 상승 등을 고려한 조치다.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김성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고급주택 분류 기준을 면적 기준이 아닌 가액 기준으로 일원화하는 내용을 담은 '지방세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한 것이다. 고급주택 가액 기준은 현실에 맞게 대폭 상향할 필요가 있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고급주택 취득세 중과세율(8%) 역시 과도한 세부담 증가 논란 등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다. 따라서 중과세율을 낮추는 한편, 급격한 조세 부담 증가를 막기 위해 일괄적으로 단일세율을 적용하기보다는 과세 구간별로 '초과누진세율'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이참에 고급주택 규제를 아예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미 종합부동산세(종부세)와 양도세 등을 통해 고급·고가주택에 대한 중과세가 부과되고 있고, 취득세도 가액별로 세율이 다른데 굳이 고급주택 기준을 따로 마련해 규제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조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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