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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허가받은 시설의 안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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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08. 23. 06:00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원자력발전소 인허가 과정이 어떻게 설계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면 규제기관과 사업자 그리고 대중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원자력시설의 허가과정은 미국 원자력안전규제위원회(US NRC)의 허가과정을 그대로 옮겨왔다.

인허가 과정에서 사업자가 규제자에게 심사를 받을 때는 사업자와 규제자는 대척적인 관계이다. 규제자가 질문을 하고 사업자는 답변을 한다. 답변이 납득되지 않으면 재차 질의를 하고 사업자는 다시 답변을 한다. 납득이 될 때까지 꾸준히 질문을 하는 2년 여의 과정을 거친다. 사업자는 쉽게 넘어가고 싶고 규제자는 게이트 키퍼라는 책임감 때문에 쉽게 봐주고 넘어가지 않는다.

이에 대해 반핵 환경운동가들은 사업자가 인허가를 신청만 하면 항상 허가가 나온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사업자나 규제자 모두가 한통속의 마피아라고 몰아 붙인다. 그들은 원자력시설의 허가과정을 합격·불합격으로 결론나는 자동차 운전면허 시험처럼 이해하는 것이다.

원자력시설의 인허가의 과정은 단번에 합격과 불합격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미흡한 부분에 대해 질의답변을 하고 그것으로 만족스럽지 않다면 재실험을 통해서 안전성을 입증하거나, 그것도 안되면 설비보완를 하게 되는데 그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허가를 신청하면 허가가 나오기는 하지만, 그 중간과정을 이해한다면 한통속이라는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규제자와 사업자가 대척점에 놓이는 것은 여기까지다. 일단 규제기관의 안전성을 확인하고 나면 그 이후의 공청회 등의 절차에서는 사업자와 규제자는 한 편이 돼 대중을 상대한다. 대중이 규제기관이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지 않는다면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규제기관이 안전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대중의 의혹이 제기되면 규제기관이 나선다.

그런데 이게 우리와 다르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힘 있는 자는 외면하고 힘 없는 자가 책임을 진다. 원전 정기검사를 마치고 규제기관의 재가동 허가를 받으려면 사업자가 주민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다. 법안을 만들거나 중요한 제도가 변경되면 공청회 등을 통해서 동의를 받지만 모든 행정행위 하나하나를 주민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은 참 알수 없는 행정이다. 또 검사를 규제기관이 했으면 규제기관이 주민에게 설득해야지 왜 사업자에게 해오라고 하는가?

원전 계속운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업자가 공청회를 하고 그 결과를 계속운전 신청시 첨부하도록 되어있다. 공청회에서는 중대사고와 관련한 규정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규정은 그걸 정한 사람의 책임인데 사업자가 답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공청회는 행정의 최종책임자인 규제기관이 해야 한다. 또 계속운전에 대한 규제기관의 심사를 마치고 나서 공청회를 하는 것이 정상이지 심사를 하기도 전에 공청회를 요구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 규제기관은 자신이 해야할 대중과의 소통을 사업자에게 떠넘긴다.

그 유명한 균도네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고리원전 인근에 살던 주민이 갑상샘암에 걸렸다고 한국수력원자력에 소송을 제기했다. 고리 인근의 환경방사능은 자연방사선 수준을 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사건·사고로 인해 이를 초과한 적도 없다. 사업자가 규제기관이 정한 기준을 위반해 높은 방사선 피폭이 발생했다면 사업자의 책임이다. 그런데 허용기준 이내로 운전했다면, 그리고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면 이는 규제기관이 나섰어야 했다. 그런데 하지 않았다.

국민이 원자력시설의 안전성을 불안해한다면 그것은 허가를 준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불안해하는 것이다. 규제기관은 문제가 생길 때마다 사업자에게 책임을 미루고 사업자 뒤에 숨는다. 최소한 규제기관이 안전성을 확인한 부분에 대해서는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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