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를 바라보는 금융권의 시각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을 때 ‘금융홀대론’이 제기됐다. 정부의 경제정책에서 금융의 역할과 비중은 위축되는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의 금융정책에는 서민 지원만 담겨있을 뿐 금융산업의 방향성은 없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금융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변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글로벌 경제가 침체됐고, 국내 경기도 크게 위축됐다. 기업들이 대거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고, 긴급 수혈을 하지 않으면 줄도산 사태로 이어질 상황이었다.
이 때 금융권이 소방수 역할을 맡았다. 금융권은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기 시작한 지난 2월부터 8월 말까지 100조원을 지원했다. 또한 대출 만기연장과 이자상환 유예 조치도 내년 3월까지 연장했다.
이 부담은 고스란히 금융권이 지고 있다. 시중은행을 비롯해 금융권은 코로나19 대응 차원에서 자금을 공급하는 동시에, 회수가 불확실하다는 점을 감안 대규모 충당금까지 쌓고 있다.
한국판 뉴딜에도 금융권은 동원됐다. 신한금융과 KB금융, 하나금융, 우리금융, 농협금융 등 5대 금융은 한국판 뉴딜 정책 지원 위해 5년간 70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또 다른 청구서를 정부로부터 받았다. 이 때문에 5대 금융그룹 회장을 비롯해 금융권 주요 CEO들은 청와대에 불려가기도 했다. 20조원 규모로 조성하는 정책형 뉴딜펀드에 13조원 규모는 민간에서 부담해야 한다. 뉴딜 인프라펀드와 민간 뉴딜펀드 활성화를 위해서도 금융권의 참여가 요구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라임펀드 등 사모펀드 사태에서도 정부는 금융권 책임을 강조했다. 금융당국이 권고한 라임 무역금융펀드 전액 배상을 판매사들이 수용한 만큼, 다른 사모펀드 투자자들도 은행 등 판매사에 더 많은 배상을 요구할 것은 뻔한 얘기다. 과도한 책임 요구가 금융사들의 부담만 키우는 상황이다.
정부의 정책과정에 동원되면서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지만, 그 수고에 대한 과실은 금융권이 공유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 금융권 고위 인사는 “정부 청구서에 얼마가 찍혀 있을지 두렵다”고 하소연했다. 책임과 역할을 키운 만큼 그에 대한 보상도 뒷받침돼야 정책의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은 정부도 다시 한번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