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를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터키가 장미 오일과 장미수, 이를 가공한 향수, 크림, 비누 등으로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장미는 대부분이 서부의 작은 도시 으스파르타에서 생산되고 있다. 터키를 넘어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장미 오일 원료의 65%가 으스파르타에서 나온다.
으스파르타는 터키 심장부 이스탄불에서 버스로 11시간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다. ‘장미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만큼 으스파르타에 도착하면 매혹적인 장미향과 곳곳에 가득 피어난 장미, 장미 오일 가공품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으스파르타는 지중해성 기후와 대륙성 기후가 만나는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서부, 남부 지역보다 덥지 않고 중부 지역보다는 춥지 않다. 이상 기후 현상이 없고 일조량도 좋아 장미 오일에 이용되는 다마스크 장미가 자라기에 안성맞춤이다. 장미뿐만 아니라 관광객들도 이런 으스파르타의 기후를 사랑한다. 특히 5~6월에는 며칠에 걸친 대대적인 장미 축제가 열려 장미 퍼레이드, 장미 수확 체험 등 다채로운 행사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으스파르타에서 관광객을 앗아갔다. 으스파르타 문화관광청 소속 파티흐 빌기취는 매년 장미철에만 약 45만명의 관광객이 찾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로는 그 수가 약 14만명으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고 밝혔다.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작년 장미 축제는 아예 취소됐고 올해는 간단하게 퍼레이드만 진행했다.
터키 으스파르타 규네이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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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으스파르타 규네이켄트 마을 광장에 위치한 이스마일 에펜디 동상/사진=정근애 이스탄불 통신원
그래도 여름은 오고 꽃은 핀다. 여전히 으스파르타 곳곳에는 장미가 만발했고 드넓은 장미밭이 펼쳐진 규네이켄트 마을에서는 수확한 장미 포대를 싣고 이동하는 트랙터를 몇 대나 볼 수 있었다. 적은 수였지만 국내 여행을 온 터키인 관광객들도 있었다. 이들은 장미 협동 조합 귤비를릭이 만든 박물관에서 터키 최초로 장미 오일을 대량생산하는 데 이용됐던 기계를 구경하고 장미 꽃잎을 잔뜩 채운 장미 풀장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다. 귤비를릭 관계자는 으스파르타에서 증기와 냉각수를 이용하는 수증기 증류법으로 장미 오일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귤비를릭 마을 광장 한켠에서 장미 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만든 이 작은 박물관은 모닥불과 나무 수통을 이용하는 정통식 증류 기계와 1800년대 후반 실제로 사용된 장미수·장미오일 병 등을 전시하고 있다. 터키에 처음으로 다마스크 장미를 들여온 이스마일 에펜디에 대한 기록이 있다. 1888년 불가리아에서 장미 모종 반출을 금지하자 이스마일 에펜디는 지팡이에 장미 씨앗을 숨겨 터키로 가지고 왔다. ‘터키 문익점’이자 현재의 으스파르타를 있게 한 주인공이다.
터키 으스파르타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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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오일을 만들기 위해 수확된 장미들/사진=정근애 이스탄불 통신원
이 박물관을 만든 마을 사람 중 한 명이자 장미를 수확하는 농부인 한 노장은 규네이켄트 마을 장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는 프랑스의 한 천연 화장품 회사에 장미 오일을 직접 납품한다. 그는 장미 1kg의 가격은 6.5리라(약 850원)에 불과하지만 장미 오일 1g을 만드는 데 약 3000송이 장미가 필요한 만큼 오일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설명했다. 순수 장미 오일 1kg 가격은 4만유로(약 5400만원)다. 올해는 전 세계적으로 더운 날씨가 지속돼 장미 수확량이 크게 늘어난 탓에 가격이 많이 떨어졌지만 2년 전까지 장미 오일 1kg에 11만유로(약 1억4800만원)를 받았다.
장미 자랑을 마친 그는 갑자기 핸드폰을 켜고 가족 사진을 보여줬다. 딸은 남편과 함께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업을 하고 있고 손주는 ‘올백’에 가까운 성적으로 의대를 목표로 한다며 자랑했다. 장미 농사로 키운 소중한 핏줄이다. 으스파르타의 장미는 세계인의 피부 건강을 지키는 것은 물론 나이 든 농부의 기쁨과 그 가족들의 꿈까지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