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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기 칼럼] 김정은이 만든 민생 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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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3. 08. 28. 18:09

조영기
조영기 전 고려대 교수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1일 평안남도 간석지 건설종합기업소 안석 간석지 피해복구 현장을 방문했다고 22일 보도했다. 그 현장은 간석지 제방 배수 구조물 설치 공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바닷물에 제방이 파괴되면서 간석지 구역이 침수된 곳이다. 노동신문은 제방이 터져 물이 넘쳐 흘러드는 사진과 함께 김정은이 팔을 걷어붙인 채 허벅지까지 물이 차오른 논에 직접 들어간 사진도 함께 게재했다.

특히 침수된 논에 들어간 한 컷의 사진으로 김정은은 극적인 선전효과를 노렸다고 분석된다. 즉 "나는 식량난 해결을 위해 온 힘을 쏟아부었지만 농업담당자들이 무책임하게 일했기 때문에 이처럼 엄청난 사태가 발생되었다. 그래서 나는 잘못이 없고 담당자의 무능과 무책임이 만든 참화다." 이런 포석에는 저의가 숨겨져 있다. 바로 침수현장에서 김정은의 연출과 질타가 이를 대변해 준다. "행정경제 규율이 문란해진 결과 건달뱅이들의 무책임한 일본새(=일하는 태도)", "내각 총리(=김덕훈)의 무맥한(=힘없는)
사업태도와 비뚤어진 관점"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정치적 미숙아들, 지적 저능아들, 책무에 불성실한 자들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면서 당적 법적 책임을 물어 처벌할 것을 주문했다. 앞으로 대대적인 검열과 피의 숙청이 자행될 것을 예고했다. 이는 1990년대 중반 '(소위) 고난의 행군' 시기 김정일이 극심한 식량부족으로 야기된 수십만 명의 아사자 발생 책임을 노동당 농업비서에게 뒤집어씌운 전철이 재현될 것 같다. 당시 통치자금으로 식량을 수입했다면 대량 아사를 모면할 수 있었다. 오히려 김정일은 희생양을 찾는 비겁한 모습을 보였다.

금년 1~7월 발생된 아사자는 예년에 비해 2배 이상 발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안석 간석지에서 김정은의 연출과 노골적 언어는 식량부족이 야기할 민심이반을 차단하려는 사전 포석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민심이반을 차단할 희생양이 필요했다. 1인 독재체제에서 희생양을 찾아 자신의 면책 도구로 삼는 것은 상식이다. 문제는 이런 '희생양 찾기'가 결코 근원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는 점이다. 바로 잘못된 체제와 정책이 만들어 낸 민생 참화다. 김일성의 '쌀밥, 비단옷, 기와집' 호언장담이 65년이 지난 지금도 실현되지 않는 요인은 체제 때문이다. 자유가 사라진 비합리적 체제도 문제지만 잘못된 정책을 반복하는 독재자의 만용도 문제다.
2012년 3대 세습으로 권좌에 오른 김정은이 직면한 당면과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백두혈통의 정통성을 이어가는 과제이며, 또 하나는 비합리적 체제로 악화된 민생문제를 해결해 통치기반을 다지는 정당성 확보의 과제다.

그러나 정통성 유지의 과제와 정당성 확보의 과제는 서로 상반된 속성 때문에 두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즉 정통성의 속성은 매우 폐쇄적이고 경직적이기 때문에 변화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반면 정당성 확보를 위한 민생문제는 기존 체제의 오류 내지 불합리성을 시정 내지 개혁해야 가능하다. 따라서 북한의 식량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접근되어야 해결 가능한 과제다. 하지만 김정은은 백두혈통의 정통성에 방점을 두면서 인민생활 향상시킬 개혁 개방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안석 간석지에서 김정은의 행동을 진정성 있는 행동으로 평가할 수 없다.

2013년 김정은은 '핵·경제발전 병진정책' 채택했다. 이 정책은 김일성의 군산병진정책, 김정일의 선군경제발전을 계승한 정책으
로 군사우선의 원칙이 철저하게 적용되는 정책이다. 또한 핵·경제 병진정책의 요체는 핵무력으로 백두혈통의 정통성을 이어가겠다는 결기(?)의 산물이다. 이는 핵무력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주체의 무기이자 정통성의 보루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핵·경제 병진 정책은 경제난을, 더 구체적으로는 식량위기를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매우 잘못된 정책임이 분명하다.

반면 인민경제 향상은 경제발전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는 김정은에게 정당성 확보의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핵·경제 병진정책의 문제는 핵무력의 지향점과 경제의 지향점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즉 핵무력은 국제사회와 단절된 상태에서 핵개발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폐쇄적 속성이 있다. 그러나 경제는 상호의존적 속성 때문에 국제사회와의 의존적 개방적인 속성이 있고, 이런 속성이 충족되어야 경제발전이 가능하다. 소국경제인 북한의 선택은 택일의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고, 체제의 특성상 '핵무력'을 선택하고 인민경제를 희생시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결국 주체사상의 정통성을 고집하는 것이 인민경제 향상에 최대 걸림돌이다.

한편 경제발전은 개혁·개방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전제는 중국 경제발전에서 입증되었다. 따라서 북한이라고 결코 예외일 수 없다. 개혁은 내부 경제의 비효율성을 제거하기 위해 체제(제도)를 개선해 경제적 효율성을 도모하는 것이며, 개방은 외국자본과 기술을 유치해 경제발전을 실현하는 것이다. 특히 개방 시 중요한 요소는 자본(과 기술)유치국의 입장보다 투자 결정 주체인 자본투자국(기업)의 입장이다. 즉 경제특구를 조성해 두었다고 투자가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투자국이 고려하는 요소는 유치국이 국제규범 준수 여부다.

북한의 핵무력 고집은 국제규범을 정면으로 위반한 행위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발전의 동력인 자본유치는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지구상에 5500여 개의 경제특구가 조성된 상황에서 북한의 자본유치는 녹록지 않다. 이런 점에서 김정은의 핵·경제 발전 병진정책은 민생 참화를 초래한 정책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의 과제는 분명하다. 국제사회와 공조해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로 나설 수밖에 없는 대내외 환경을 조성해 북한 주민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 그래야 자유통일의 길이 열린다.

조영기 (전 고려대 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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