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취재후일담] 아전인수로 공멸의 길 걷지 말기를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koreanwave.asiatoday.co.kr/kn/view.php?key=20240804010001778

글자크기

닫기

지환혁 기자

승인 : 2024. 08. 04. 20:00

clip20240804161257
한화오션의 한국형 구축함(KDDX) 모형./ 제공=한화오션
지난 주 국방과학연구소(ADD)가 발주한 6500t급 대형 해상시험선 사업 입찰결과를 놓고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또 다시 격돌했습니다.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아전인수(我田引水)격 행동이 계속되면 공멸의 길에 접어들 수도 있겠다'는 우려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양쪽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본 결과, 누가 이기든 '상처뿐인 영광'이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한국형 구축함(KDDX) 사업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두 회사의 이번 격돌은 한 언론보도로 시작합니다. 이 보도의 취지는 ADD해양기술연구원이 유도탄 발사 플랫폼용 대형시험선의 상세설계 및 함 건조 사업자를 경쟁입찰로 결정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대형시험선 사업의 기본설계를 한화오션이 수행했지만 개선사항을 반영한 경쟁입찰로 HD현대중공업이 상세설계 및 건조사업 1순위 사업자로 선정된 것을 두고 이렇게 보도를 했습니다.

한화오션도 기자들에게 배포한 '보도참고자료'를 통해 "차세대 유도탄 개발시험 지원과 고고도 비행체 개발시험 및 실용화를 위한 지원 등 요구 성능에 따른 설계 난이도에 비해 적은 예산이었지만, 국가안보와 국민의 안위를 우선 생각해야 하는 함정 방산업체 사명감으로 기본설계 사업에 단독으로 참여해, 2023년 8월 기본설계 사업을 정상적으로 완료했다"고 설명하면서 "KDDX 사업 역시 HD현대중공업이 대형시험선 사업 수주에서 주장한 대로 기본설계에 대해 방위사업청에서 추가 개선사항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바, 개선사항을 검토 반영한 경쟁입찰로 상세설계 및 선도함 사업자를 선정한다면 더 나은 KDDX 사업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한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대형수송선은 '일반물자'이지만 KDDX는 '방산물자'였다는 점이죠. 일반물자는 경쟁입찰을 해야 하는 반면 방산물자는 현행 규정상 수의계약이 가능합니다. 방위사업관리규정에는 '기본설계 주관기관이 계속하여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를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위원회 또는 분과위원회 심의를 거쳐 기본설계 참여업체로 하여금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를 계속 수행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방산물자로 지정된 KDDX의 사업방식은 결격 사유가 없는 한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가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담당하는 구조입니다. 현행법상 수의계약을 할 수 없는 사업에서 경쟁입찰을 했다는 이유로 기본적으로 수의계약을 해야 할 사업까지 경쟁입찰을 해야 한다는 한화오션의 주장은 좀 어설퍼 보였습니다. 이런 논리를 펴면서 자신들이 경쟁입찰에서 진 걸 자백한 꼴이 됐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물론 한화오션 주장의 핵심은 '만약 연구개발 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업체가 느닷없이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에 뛰어든다면, 사업기간과 비용이 늘어나 전력화 기간은 맞출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업자체가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져 국민의 피 같은 돈이 낭비될 것이 자명하다'는 HD현대중공업의 기존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가 선도함을 건조해야 한다는 논리를 깨기 위한 것이었다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현재 상황은 방위사업청이 KDDX 사업방식으로 '수의계약'을 고집할 수 없는 분위기입니다. 앞선 과정에서 이른바 '기술탈취' 행위를 한 HD현대중공업의 원죄 때문이죠. 이 때문에 방위사업청도 사업방식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것입니다. 석종건 방위사업청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원칙은 '수의계약'이지만 도덕적 이슈로 '경쟁입찰'도 고려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방위사업청의 결정에는 현재 진행중인 경찰의 수사 결과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입니다.

방산업계 관계자들에게는 악몽 같은 기억이 있습니다. 2015년 이른바 '방산비리'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방산은 수년간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며 자정의 노력을 했고, 와신상담 끝에 최근의 'K 방산' 신화를 써내려 가고 있습니다. 이 교훈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경찰은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로 더 이상의 혼란을 막아야 합니다. 방위사업청은 원칙을 준수하면서도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가지고 사업을 추진해야 합니다. 방위사업청이 사업 추진 방식을 두고 좌고우면하는 동안 'K 방산'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방위사업청이 제 역할을 못한다는 지적과 함께 일부러 '방위사업청 무용론'을 부추긴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습니다. 수수방관하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도 이곳 저곳 눈치만 보지 말고 방산업체 지정을 신속히 해서 이 혼란을 조기에 매듭짓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산업통상자원부의 존재 이유가 정무적 입장에서의 거수기가 아니라 국가산업발전과 수출 활성화를 위한 전문 기관이길 자처하고 싶다면 말이죠. 업계는 당장 눈 앞의 이익만 쫓을 게 아니라 장기적 안목으로 'K 방산'의 미래를 내다봐야 합니다. 상대방을 깎아 내리는 것이 아닌 자신의 실력으로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합니다. 자칫 이번 KDDX 사업이 갈 길이 먼 'K 방산'의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뿐입니다.
지환혁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