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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칼럼] 아파트,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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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10. 2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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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대기자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1980년대를 풍미한 가수 윤수일이 작사·작곡해 발표한 대중가요 '아파트'의 앞부분 가사다. 당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이들이 즐겨 불렀던 이른바 '국민가요'였다. 떠나가 버린 연인의 아파트 앞을 홀로 서성인다는 구슬픈 가사를 담고 있다. 단조 노래지만 흥이 있어 야구장 등 스포츠 경기장에서 응원가로 자주 소환됐다. 모 대학의 응원가로도 동원되기도 했다고 한다. 노래방 애창곡으로도 한동안 그 위세를 떨쳤다. 1980년대 초 대학을 다닌 내 또래 머릿속에는 아직도 이 노래의 가사와 리듬이 맴돌 정도다. 가수 김건모가 리메이크해 윤수일의 단조 노래를 신나는 노래로 바꿨으나, 윤수일 노래만 못하다는 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60세대에게는 여전히 향수 짙은 노래다.

발표로부터 꼬박 40여 년이 지난 올해 같은 제목의 아파트 노래가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윤수일의 아파트가 국내용이었다면, 이번에 나온 블랙핑크 멤버 로제가 세계적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협업한 신곡 '아파트(APT.)'는 온라인상에서 들불처럼 번지는 글로벌용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칠까. 아파트는 술자리에서 젊은이들이 즐기는 '아파트 게임'을 소재로 삼았다고 한다. 이 게임은 참가자들이 양손을 포개 쌓아 올린 뒤 맨 아래서부터 손을 하나씩 빼다가 술래가 처음 외친 특정 숫자(층수)에서 손을 빼는 사람이 벌주를 마시는 놀이란다. 영어로 된 아파트의 가사는 아파트에서 파티 분위기를 즐기고 싶어 하는 감정을 담고 있다. 상대방과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 그리고 함께 파티를 즐기고자 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어찌 보면 여느 대중가요와 마찬가지로 그냥 그런 내용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노래의 리듬이 단순하면서도 반복적이어서 중독의 마력을 지닌 모양이다. 누구나 따라 부르기 쉽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인지 아파트는 국내 주요 음원 차트를 비롯해 공중파 음악방송에서 1위를 휩쓸고 있다.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 7일 만에 1억 스트리밍을 달성했으며 영국 오피셜 싱글차트 톱100에 4위로 진입하기도 했다. 덩달아 음원 유통사 주가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유튜브와 틱톡 같은 영상 플랫폼과 소셜미디어에서는 로제의 노래와 춤, 아파트 게임을 이용해 만든 각종 밈(meme)과 챌린지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견줄 글로벌 메가히트곡 탄생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보름 앞으로 다가온 올해 수능시험 수험생들이 이 노래를 부르지 않으려고 애쓴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노랫말과 멜로디가 강한 중독성을 갖고 있어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기에 수능 시험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수능 금지곡'으로 분류됐다니 놀랄 따름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아파트가 유혹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는 등 동양 문화의 가치관과 상충되는 행동을 노래 속에서 정상화했다며 '유해 음악'으로 평가했다.

급기야는 아파트 패러디 영상도 올라온다. 한 영상을 보면 다수의 등장인물이 아파트를 노래하던 중 한 명이 다른 친구에게 "너 아파트 있니" 하고 물어본다. 질문을 받은 한 사람이 울상을 지으면서 "나는 없다"라고 답하자 나머지도 잇달아 "나도 없다"라며 씁쓸한 표정으로 되풀이한다. 로제의 아파트가 연인의 애틋한 감정을 주제로 하고 있다면, 이 영상은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리는 우리나라에서 주로 젊은 층들이 주택구입난을 하소연하는 매개체로 활용되고 있다. '얼죽신(얼어 죽어도 신축아파트)'에서 즐겁게 놀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담고 있다.

서울 등 주요 지역의 아파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아파트 생활을 원하는 젊은 층의 꿈이 점점 옅어지는 것을 빗댄 이런 패러디가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그만큼 젊은 층의 주거난이 심각한 상황임을 반영한다.

우리뿐만 아니라 영국 런던 등 전 세계 주요 도시의 주택난은 심각할 정도다. 미국 실리콘 밸리에 있는 방 2개짜리 아파트 월세가 1000만원에 육박한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다. 런던의 경우에는 주택 마련을 못 한 젊은 층이 값싼 배를 구입해 테임스 강에 띄어놓고 그곳에서 먹고 자고 한다는 얘기가 들릴 정도다. 집을 구하지 못해 대도시 도심 거리에서 생활하는 '타의적' 노숙자들도 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서울에서도 월세 1000만원이 훌쩍 넘는 아파트 등 초고가 공동주거시설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가히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별명이 어울릴 정도로 아파트가 많다. 좁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거주해야 하니 이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일 게다. 홍콩 등 도시 국가 역시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역대 정부는 그동안 젊은 층 및 주거 취약계층의 쾌적한 삶의 질 보장을 위해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지만, 실효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더 나은 삶의 공간에서 가족과 함께 편안하고 안정된 일상을 보내고 싶어 하는 주거 취약계층이 아파트 노래를 그냥 노래로 흥얼거리며 즐겨 부를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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