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이경욱 칼럼] 만시지탄 ‘여야의정협의체’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koreanwave.asiatoday.co.kr/kn/view.php?key=20241114010007422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4. 11. 14. 18:16

이경욱
아시아투데이 대기자
"요즘 의사로서 자괴감을 심하게 느낍니다."(40대 후반 개업의)

"전공의 아들이 집에서 하릴없이 쉬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습니다."(의대생 아들을 둔 60대 남성)

"의료 사태만 아니면 아버지가 좀 더 사셨을 텐데…."(아버지 떠나보낸 60대 아들)

"의대 교수가 전공의에게 막말한다고 의대생 아들이 하소연합니다."(의대생 아들을 둔 60대 여성)
40대 후반 개업의는 의료 사태 이후 의사 집단을 비난하는 정부와 여론 탓에 의사를 왜 직업으로 택했는지 자괴감이 든다고 수시로 말한다. 의료시스템의 최전방 몇 평 안 되는 공간에서 하루 종일 숱한 환자들을 진료하고 처방을 내리는 일에 의사로서의 자부심을 가져온 그다. 그런 그는 의료 사태가 불거진 이후 비난 여론을 접하면서 도대체 뭐가 잘못됐을까 하는 고민에 의욕이 떨어진다고 개탄했다. 그럴 때마다 의료 사태 야기가 누구 한쪽의 잘못은 절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정부와 의료계가 평행선을 달리며 대치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현실이 막막하다고 덧붙였다.

전공의 과정 마무리쯤 시작된 의료 사태로 병원을 떠나 하루 종일 집에서 지내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버지도 마음이 편치 않다. 별 탈 없이 보이던 의료시스템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 모범생 아들이 저렇게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생각할수록 답답하다.

갑작스레 병세가 악화한 아버지를 황급히 서울 시내 대형 종합병원으로 모시고 간 60대는 의사가 없다는 말에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여기저기 입원 가능한 병원을 수소문한 끝에 겨우 중형 병원에 입원시켰지만, 아버지는 며칠 후 세상을 떠났다. 이런 아픈 사연을 간직한 60대는 잘 돌아가던 의료시스템이 어디에서부터 문제가 생겨 뒤틀렸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교수가 심한 욕설을 퍼붓고 심지어 손찌검까지 한다며 잠을 못 이루는 전공의 아들을 보면서 우리의 의료시스템이 과연 정상인지 수시로 자문해 보는 60대 여성은 의사 교육 시스템 전반에 걸쳐 대대적인 자성과 개혁이 필요하다고 확신한다.

의사라는 직업을 돈만 밝히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몰아가는 사회가 못마땅하고 한창 의술을 펼쳐야 하는 의대생 아들이 집에서 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부모는 이 사회가 못마땅하다. 치료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전전긍긍하던 아들은 병원과 사회가 못마땅하다. 먼저 의술을 익혔다고 한창 나이의 어린 후배들에게 상식 밖의 행위를 하는 의사를 보고 있어야 하는 학부모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이기적으로 비치는 의료인들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도 여전히 냉랭하다.

앞서 소개된 4가지 사례는 의료 사태 이후 10개월이 지난 지금껏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 어느 것 하나 남의 나라, 남의 사연이 아니다.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 이웃의 아픔이다. 우리 모두가 풀어가야 할 숙제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어야 하나. 아니다. 의사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소명 의식을 되찾을 수 있도록 모든 국민이 도와줘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의술 펼치기에 전념하는 의사들을 위해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의사가 길거리 대신 의료 현장에 머물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의사 역시 투쟁일변도 대신 협의 테이블에 앉아 정부에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도록 해야 맞다. 의사는 의술을 펼치는 존재이지 거리 투쟁에 나서는 존재가 아니기에 그렇다. 국민은 이번에 전공의의 피와 땀이 우리의 탁월한 의료시스템에 깊게 스며들어 있음을 봤다. 박봉에도 오로지 생명을 구한다는 일념 하나로 수술실과 응급실, 병실을 지켜온 전공의의 모습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 때다. 전공의가 하루속히 자기 자리로 돌아가 환자·보호자와 혼연일체가 돼 치료에 나설 수 있도록 정부와 병원이 최선을 다해야 할 때다.

더 사실 수 있는 어르신들이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지 못해 길거리에서 생을 마감해야 하는 현실은 정부나 의료계 모두에게 뼈아픈 회한을 안겨주기 마련이다. 전공의를 교육한다면서 윽박지르고 때로 손찌검하는 구태의연한 의사들은 이제 퇴출당해야 마땅하다. 전공의가 의료현장에서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데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게 선배 의사의 의무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여당과 야당·의료계·정부가 참여하는 '여야의정협의체'가 구성된 것은 때늦은 감이 없지 않다. 정치권은 물론 의료계, 정부는 외국인과 해외 거주 한국교포들이 부러워하는 우리의 의료시스템을 조기 복구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지금은 남 탓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의대 증원으로 촉발된 의료 사태를 계기로 의료시스템 전반을 재검토해 한쪽으로 편중된 의료수가 체제를 정비하고 과도한 의료비 청구, 무분별한 실손보험 치료, 부족한 의료 인력의 효과적 충원 등 우리의 의료시스템을 복구하고 더 나아가 업그레이드해야 할 시점이다. 협의체의 신속하고도 단호한 발걸음에 기대를 걸게 되는 요즘이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