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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칼럼]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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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1. 2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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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대기자
탄핵소추된 상태로 영어(囹圄)의 몸이 된 윤석열 대통령과 학창 시절 등을 함께 한 지인들은 그가 구치소 쪽방에 머물러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안타까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정치적 판단을 근거로 잘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여전히 그를 인간적으로 아끼고 배려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직보다는 기억에 남는 학창 시절 등 추억을 먼저 생각하기에 더 그럴 게다. 역사의 격변 앞에 선 동창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에 무력감도 느낄 것이다.

더 나아가 윤 대통령 구속은 대한민국 정치가 "그저 그렇구나"라는 조롱을 세계인에게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K팝 등 한류로 세계를 주름잡던 대한민국은 온 데간데없고 낮아도 한참 낮은 정치적 저개발국이 됐다는 비아냥거림은 이제 새롭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을 둘러싸고 각국이 자국 이익 보호를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며 골몰하고 있는 사이, 대한민국은 그 대열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우려가 돌고 있는 요즘이다.
비상계엄 선포도 선포지만, 현직 대통령 구속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로 모두가 휘청거리고 있다. "우리가 쌓아 올린 한류, K팝은 신기류였을까" "우리는 진정 정치적 후진국의 나락으로 추락한 것일까" 우리의 현 국력이 과대포장 된 상태에 머물러 있었나 하는 자괴감에 빠져 있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 정치적 격변이 몰고 온 국가적 충격파는 피해 범위를 측정하기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 됐다. 그것도 연말연시 차분히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 계획을 세워가야 하는 시기, 느닷없는 광풍(狂風)처럼 불어 닥친격변은 모두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군인이 국회의사당에 진입하는 모습에서부터 대통령 관저를 놓고 경찰과 경호원들이 대치하는 모습, 서울구치소로 오가는 윤 대통령의 모습, 서울서부지방법원 판사의 구속영장 발부 등 불과 50일 만에 전광석화처럼 우리의 시신경과 뇌를 자극한 잇단 사건은 또다시 목도하고 싶지 않는 우리의 자화상이 되고야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의 정치 현대사가 역대 대통령 피살·구속·자살 등 흑역사로 얼룩진 안타까운 상황에서 또다시 터진 현직 대통령 구속은 국민 모두에게 씻어내기 어려운 정신적 트라우마로 자리 잡게 됐다.

그 후, 정확히 말하면 윤 대통령의 구속 그 이후,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뭘 어떻게 해야 차제에 정치 발 트라우마가 고착화되는 상황을 선제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까. 바닷속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가 이번 광풍으로 실체를 드러낸 우리 사회의 오염 덩어리, 암 덩어리를 정밀하게 들여다보고 하나하나 제거해야 하는 게 차단의 첩경 아닐까 싶다.

부정선거에 대한 의혹이 간헐적으로 제기돼 왔고, 윤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 언급이 있었으니 부정선거가 과연 자행됐는지 분명한 조사가 필요하다. 이 세상 모든 제도는 시간이 흐르면서 없었던 흠결이 생겨나기 마련이고 그래서 꾸준히 개선 노력을 경주하는 게 이치인 만큼, 이번 기회에 불편부당한 독립적 부정선거 조사기구가 엄정하고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하는 게 옳다. 그리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성역처럼 돼 있는 사법부 시스템도 국민의 엄격한 판단을 받아야 할 때가 됐다. 윤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판사는 40명 판사 중 당직에 걸린 판사였다. 그 짧은 시간에 엄청나게 복잡하고 중차대한 사안을 혼자 판단하고 결론을 내리는 지금의 사법 제도를 국민이 과연 납득할까. 지난 20대 대통령선거에서 윤 대통령을 선출한 48.56% 국민이 갖는 대의민주주의 참정권이 판사 1명의 판단으로 훼손되는 것은 트라우마 극복에 역행하는 일이다.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는 단 15자의 사유로 현직 대통령에게 수의를 입힌 것은 중대한 사법적 흠결 중 하나다.

거대야당의 폭주를 제도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정치적 시스템 정비도 뒤따라야 한다. 대통령 중심제의 폐해를 개선하고 철저한 3권 분립 제도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정치인 모두가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경제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빠지거나 말거나 정권 탈취에만 모든 것을 거는 정치인들에게 국민의 삶을 맡기는 게 늘 온당한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탄핵소추 기각 후 우리 정치가 쉽게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기대하는 국민은 드물 것이다. 용인이 된다고 하면 정치적 혼란 속에 차기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되풀이돼 온 정치적 흑역사를 털어내지 않으면 차기 대통령도 어지간해서는 흑역사 범주에서 피할 수 없으리라. 그렇다면 국민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정치적 격변을 치를 떨며 또 마주해야 할 것이다. 정치적 격변은 그 후가 더 중요하다. 모두가 제자리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책임을 철저히 수행해 나갈 때 지금의 광풍은 대한민국을 다시 세우는 순풍(順風)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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