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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멀티캐스트’ 전성시대, ‘원캐스트’가 그립다

[기자의눈]‘멀티캐스트’ 전성시대, ‘원캐스트’가 그립다

기사승인 2021. 12. 2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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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전혜원 문화부 차장
관록의 노배우 이순재는 88세의 나이에도 장장 3시간이 넘는 연극 ‘리어왕’ 공연을 전회 단독 출연으로 소화해냈다. 이 작품에서 타이틀롤 리어왕 역을 맡아 많은 양의 대사를 정확하게 구현하는 등, 오랜 내공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연기로 박수갈채를 받았다. 공연계에 ‘멀티캐스트’ 바람이 거센 가운데, ‘원캐스트’로 작품에 임한 그의 진정성 있는 연기는 객석에 큰 울림을 전했다.

뉴욕 브로드웨이나 런던 웨스트엔드에서는 한 배우가 공연 전체를 책임지는 원캐스트가 일반적인데 반해, 국내에서는 여러 배우들이 한 역할을 맡는 멀티 캐스트가 대부분이다. 더군다나 예전에는 2~3명 정도였던 멀티캐스트가 최근 4~5명까지 늘어났다.

국내 공연계 특히 뮤지컬계에서 멀티캐스트가 많아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티켓 수익’이다. 공연의 큰 수익원이라 할 수 있는 ‘회전문 관객’(같은 공연을 여러 번 보는 관객)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다양한 출연진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방송이나 영화 등으로 바쁜 아이돌 가수나 스타 배우들을 출연시키기 위해서는 멀티캐스팅을 할 수밖에 없다. 인기 뮤지컬 배우들의 겹치기 출연에 따른 스케줄 문제도 원인으로 꼽힌다.

한 배역을 여럿이 맡으면 조합에 따라 각기 다른 매력을 보여줄 수 있어 긍정적 효과도 있으나, 무엇이든 ‘과유불급’이다. 일각에서는 멀티캐스트 때문에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원캐스트는 연습 시간이 길어 배우들 간 호흡이 척척 맞는 반면, 멀티캐스트는 제한된 시간에 여러 팀이 연습을 하며 집중이 흐려질 수 있다. 또한 제작사가 벌어들인 수익이 고스란히 스타 배우들의 고액 출연료로 빠져나가는 점도 문제다.

물론 배우의 ‘진정성’ 여부에 해법이 있다. 원캐스트든 멀티캐스트든, 배우들이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자세로 작품에 임한다면 관객 입장에서는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80대 후반의 노구를 이끌고 홀로 사력을 다한 이순재의 ‘리어왕’같은 공연이 내년에는 더 많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배우의 대체 불가능한 매력을 가장 확실하게 감상할 수 있는 장소, 그곳이 바로 무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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