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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흑해 교역로를 통한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 재개에 합의한지 이틀만에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를 폭격했다. 유엔 등 국제사회는 세계적 식량난 해소를 위해 맺은 약속을 파기한 것이라며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23일(현지시간) 로이터·AFP 통신 등 주요 언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수출항 중 한 곳인 남부 오데사에 러시아군이 쏜 것으로 추정되는 미사일 2발이 떨어졌다.
우크라이나 남부작전사령부는 이날 "러시아군이 칼리브르 순항 미사일로 오데사 항구를 공격했다"며 "미사일 2발은 방공망으로 격추됐으나 2발은 항구 기반시설을 타격했다"고 밝혔다.
이번 오데사 폭격은 지난 22일 우크라이나산 곡물을 흑해로 수출하기 위한 우크라이나, 러시아, 유엔, 튀르키예(터키) 간 4자 협상이 타결된 이튿날에 벌어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막혔던 흑해 교역로를 풀어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을 재개해 세계적 식량난을 풀어보려 했던 국제적 합의가 실무적 준비에 들어가기도 전에 무산될 위기에 몰린 것이다.
국제사회는 즉각 러시아의 오데사 폭격을 규탄하고 나섰다. 파르한 하크 유엔 부대변인이 이날 성명을 통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 오데사 항구에서 발생한 공격을 명백히 규탄했다"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튀르키예 간 합의는 반드시 완전히 이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도 이날 트위터에 "이스탄불에서 합의가 이뤄진 지 하루 뒤에 곡물 수출에 중요한 목표물을 공격한 것은 특히 비난받을 만하다"며 "(오데사 폭격은)다시 한번 국제적 법과 약속에 대한 러시아의 완전한 무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합의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도 러시아를 맹비난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텔레그램 영상을 통해 "러시아는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 방법을 찾을 것"이라며 "이번 사건은 러시아가 무슨 약속을 하든 그들은 그것을 지키지 않을 방법을 찾을 거란 점을 입증한다"고 비판했다.
올렉 니콜렌코 우크라이나 외무부 대변인도 "러시아가 합의 후 항구를 공격하기까지 24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면서 "합의에 도달하기 위한 많은 노력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침을 뱉었다"고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러시아는 이날 공습과 관련해 직접적으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다만 합의 중재 역할을 맡았던 튀르키예 측에는 자국과 무관한 공격이라는 식으로 관여 사실을 부인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훌루시 아카르 터키 국방부 장관은 이날 자신과 접촉한 러시아 당국자가 오데사 항구 공격에 대해 "우리와 무관하다. 이 사안을 매우 면밀하게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