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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학 칼럼] 무엇이 한국의 보디 폴리틱(Body Politic)을 병들게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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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03. 13. 18:05

강성학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국가는 한때 은유적으로 인간의 육체로 비유되어 '보디 폴리틱(a Body Politic)'이라 불렸다. 국가도 인간 개인처럼 건강을 챙기지 않으면 병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의 보디 폴리틱을 병들게 하는 몇 가지 유형의 만성병이 있다. 우선 첫째 질병은 모든 보디 폴리틱에서 보이는 일반적 현상이기도 하지만 오늘날 시대착오적으로 대한민국에서 특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전복하려는 친북·친(親)중국 공산혁명 세력이다. 그들은 각종 노동단체, 시민단체, 그리고 언론계에서 단단히 똬리를 틀고 결정적 시기와 계기를 기다리면서 오늘도 반정부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은 공산주의 혁명 이론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의 장악을 위한 진지(陣地)라는 군사적 용어의 거점지역을 확대해 가고 있다. 그들에게 정치는 레닌의 말처럼 곧 전쟁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참으로 시대착오적인 질병이다.

인류 역사를 통해 정부에 대한 인민의 이익과 권리의 궁극적인 수호는 무력으로 정부를 전복할 인민의 능력, 즉 혁명의 능력이었다. 이 능력은 정부와 인민들 간 물리적 폭력의 수단이 거의 균등한 분포의 결과였다. 얼추 말하자면, 20세기 시작 이전에 우수한 조직과 훈련을 제외하고는 거의 균등한 토대에서 정부가 인민을 마주했다. 그때는 병사의 수, 사기, 그리고 리더십이 쟁점을 결정했다. 그러나 정부와 인민들 사이에 이 거의 균등한 군사력의 분포는 폭력 수단의 발전으로 우리 시대에 정부가 우월해졌다. 오늘날 정부는 가장 파괴적인 폭력 수단을 독점하고 있다. 그리고 통치 권력의 중앙집권화로 인해 정부는 수송과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효율적 수단도 역시 즉각 독점할 수 있다. 그런 우월한 힘의 독점적 집중에 대항하여 인민들은 데모하고 항의하고 탄원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들은 혁명을 통해 정부를 타도할 수 없다. 따라서 민주 정부가 자국 군부의 충성에 의존할 수 있는 한, 혁명으로 폭발하는 인민의 분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혁명가들은 궁극적으로 자살 열차를 타는 셈이다.

둘째로 국민 투표가 정부의 실질적 정책 결정에 미치는 영향 면에서 많은 의미를 상실했다. 왜냐하면 고도로 선진화된 한국사회에서 오늘날 정부가 수행하는 대부분의 중요한 정책 결정들은 일반인들의 기술적 경험과 이해를 넘어서는 것들이다. 일반인들은 감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안보, 교육, 주택, 도시문제, 복지, 국토관리 등은 오직 전문가들만이 유능하게 다룰 수 있다. 특히 국가안보정책이나 핵무장과 같은 큰 문제들은 국회나 일반인 사이에서 의미 있는 토론의 주제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의미 있는 지식이 없이는 유능한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삶과 죽음에 관한 큰 국가적 결정들은 기술적 엘리트들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 민주 정부에서도 정책 결정들은 거대한 관료조직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관료조직은 소위 '파킨슨의 법칙'이 말해주듯 관료조직의 끝없는 확장을 모색한다. 그리고 당파적 이익에 몰두한 나머지 지지 세력을 넓히기 위해 불필요한 공무원들의 채용을 과도하게 늘린다. 지난 문재인 정권은 공무원을 약 20만명 늘렸는데 이것은 일종의 매표 행위로 정치를 부패시키고 국고를 탕진하는 반국가적 행동이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태양광발전과 같은 반(反)국가경제적 거대한 국책사업들을 굶주린 하이에나들 같은 자신의 정치세력에 던져줌으로써 특정 정당의 하수인들을 돈줄로 유지하려는 속임수를 자행했다. 이런 것들은 국민의 정신세계를 비도덕적으로 타락시킨다. 이런 파당적이고 중대한 부패도 국민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정부는 국민들의 삶을 가능하게 하였다는 사기술로 국민들의 복종과 충성을 요구했다. 그러나 내세우는 기술적 합리성과 위선의 뒤에 숨겨진 만연한 부패는 대한민국 보디 폴리틱의 심장을 분명히 병들게 하였다.

셋째는 대한민국 보디 폴리틱의 고유한 불치병이다. 그것은 1948년 대한민국의 정부수립 이후 지난 75년간 지속된 숙환이다. 그 원인은 남북한 사이의 실존적 투쟁, 즉 배타적 투쟁에서 얻은 질병이다. 대한민국은 독자적으로 북한을 청산할 능력이 없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성취할 수 없는 목적이다. 유엔 헌장을 준수하는 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조국통일의 명분으로 북한을 침공할 수 없다. 그동안 남북한 사이에 간헐적이지만 여러 차례 협상이 있었다. 그러나 군사적으로만 성취할 수 있는 것을 협상 테이블에서 얻을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외과적 수술로만 치유할 수 있는 오래된 암 질환을 오직 약물로만 치료하려 드는 경우처럼 부질없어 보인다. 남북한 사이의 근본적 불신은 북한의 오랜 기만 작전에 의해 더욱 악화하였다. 북한에 기만술은 태생적이다. 북한의 지도자들은 레닌이나 스탈린처럼 모두가 저질의 마키아벨리언들로 목적을 위해서 속임수도 정당한 수단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북한 김정은 정권은 갈수록 핵무기로 남한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핵무기의 사용은 바로 자살행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핵무기는 마치 중국의 만리장성이나 1936년에 완성된 프랑스의 '마지노선'처럼 전쟁 발발 전에는 상당한 심리적인 안전감을 줄 수 있지만 실제 전쟁에선 사실상 무용지물로 판명될 가능성이 높다. 소련제국이 핵무기의 부족으로 몰락한 게 절대 아니었던 사실은 세계인 모두가 잘 알게 된 역사적 사실이다.
이런 3가지 질병이 결합하여 대한민국 보디 폴리틱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다. 대한민국의 보디 폴리틱은 오직 자신만 잘 모르는 중환자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건강 회복을 위해 최선의 치유책을 처방하고 실천해야만 한다. 우선 첫 번째 질병의 치유를 위해 우리는 과감한 외과적 수술을 단행해야만 한다. (필자의 <아시아투데이> 2023년 8월 3일자 칼럼, "역사적으로 가장 낡은 북한의 대남전략에 당하고 말 것인가?" 참조). 두 번째 질병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정부 관료제에 대한 엄밀하고 철저한 감시와 감사의 강화를 통해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척결해야 한다. 세 번째 질병은 대한민국 주도의 남북통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치유될 수 없는 불치병이다. 약물치료와 같은 평화적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도 민주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거대한 환상이다. 지금은 순전히 상상력의 세계에서만 생각할 수 있는 하나의 치유책은 미국과 중국 간 제2의 냉전에서 중국이 참패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 문제에 어떤 제3국의 개입도 막아줄 수 있는 유일한 동맹국인 미국의 승리에 가시적 기여를 해야 한다. 그러면 북한의 김정은 폭군정권도 뒤따라 쉽게 전복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북한의 정치적 상황이 와도 패전한 중국이 북한 문제에 개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럴 경우 꿈만 같던 조국의 평화적 통일, 즉, 남한에 의한 북한흡수통일의 전망이 비로소 우리의 눈앞에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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