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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명 칼럼] 공론화위 국민연금 개악, 여기서 멈춰야 한다

[윤석명 칼럼] 공론화위 국민연금 개악, 여기서 멈춰야 한다

기사승인 2024. 05. 12.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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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명
윤석명(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전 한국연금학회장)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이하 '공론화위')가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하겠다고 한다. 국민의힘 유경준 특위 간사가 21대 국회에서 합의안 도출이 무산되었음을 공식적으로 밝혔음에도, 공론화위 위원장이 남은 20일 동안에 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했다. 보건복지부 1차관은 아직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 9일에는 제대로 연금개혁을 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니 22대 국회로 넘겨서 논의하자는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대신 임기 내에 반드시 개혁안을 내겠다고 공언했다. 민주당 김성주 특위 간사는 "다 된 연금개혁, 대통령이 재 뿌렸다"며 21대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한다.

필자는 지난 2년 동안 방관자적인 입장을 보여 온 대통령실과 보건복지부의 그 간 행태를 강하게 비판해 왔다. 모수개혁안(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조정)을 반드시 내겠다고 복지부 장관이 공언해 왔음에도, 정부가 안조차 내지 않은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서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 역시,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사회수석실 핵심 참모들,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복지부 처신이 불러온 대참사라 할 수 있다.

만시지탄이지만 대통령실이 지금이라도 올바른 판단을 했다. 새로 투입된 대통령실 정책실장 판단인지는 모르겠으나, 제대로 판단했다는 점만은 높게 평가하고자 한다. 필자는 2022년 11월 한덕수 총리께 연금개혁 방향을 보고할 기회가 있었다. 2001년 OECD EDRC 회의의 연금분야 전문가로 참여했던 필자를, 당시 OECD 한덕수 대사가 집무실로 불렀다. "여기 OECD는 치열한 외교무대다. 국익이 걸린 문제이니, 잘 대처해 주기 바란다"는 당부가 있었다. 개인적인 인연을 말씀드려서인지 몰라도, 바쁜 총리가 일정을 연기하면서까지 필자의 말을 다 들어주었다. 당시 필자는 "연금 분야에서 우리는 미래를 준비하는 관점에서 볼 때 전 세계에서 가장 후진적인 국가에 속하며, 계속해서 이런 길을 간다면 국가 존립조차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삼 총리와의 인연을 꺼내는 이유는, 이번 공론화위의 제도 개편안 실상이 망국의 길로도 이끌 수 있는 개악(改惡)안임에도 개혁안으로 호도되고 있어서다. 이러한 판단의 배경에는, "소득대체율을 40%로 유지하면서 현재 9%인 보험료율을 15%까지 6%포인트를 더 올릴지라도 재정안정 달성이 어렵다"는 2023년 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결과에 기인한다. 이마저도 극단적으로 낙관적인 인구 가정을 채택한 결과다. 공론화위 시민대표단의 결정을 두고 젊은 층 커뮤니티에서 "500명을 가두어 놓고 가스라이팅 시킨 결과"라는 비난이 들끓는 배경이다.

공론화위 운영에는 많은 흠결이 있었다. 왜곡된 룰 세팅으로 인해, 전문가가 가장 선호하는 재정안정 방안을 시민대표단에게 알릴 기회조차 박탈했다. 국민연금을 결국 파탄 낼 두 가지 안 가운데 하나만을 선택하게 강요한 룰 세팅으로 인해서 정당성을 상실하고 있어서다. 시민 대표단이 학습한 이유는 연금이 처한 어려운 현실을 이해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제대로 개혁하는 것인지를 알기 위함이다. 꼭 필요한 핵심 정보를 제대로 전달할 전문가 그룹을 의제숙의단 자문단에서 배제했고, 연금제도를 존속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개혁안마저 시민대표단에게 알려 주지 않으면서 공론화를 진행했다는 점에서 국민과 언론을 기망했다고 볼 수 있다.

공론화위는 심지어 복지부가 제출한 시민대표단 학습 자료를 삭제하는 뻔뻔함까지 보였다. 필자가 출연했던 생방송 토론에 패널로 참여한 공론화위원 1명은 필자의 이런 비판이 사실이 아니라며 책임질 수 있겠냐고 윽박질렀다. 함께 출연한 다른 공론화위원 1명은 그 상황에서도 끝내 침묵했다. 그런데 방송 이후 국회 특위 유경준 의원의 질문에 대해서는 "이미 제출된 다른 자료로 대체될 수 있다고 봐서 해당 자료 삭제에 대해 동의했다"고 발언했다. 공론화위 논의과정과 결과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어렵다고 보는 배경이다.

"1960년 전후에 태어난 세대와 2035년에 태어날 세대의 생애기간 국민연금 보험료율 부담 차이가 4배에 달한다." 복지부가 제출한 시민대표단 학습용 자료에서 삭제된 내용이다. 시민대표단이 학습한 이유는 대의권 없는 18세 이하 연령층과 아직 태어나지 못한 세대를 대변하면서, 바람직한 연금개편 방향을 모색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중요한 정보를 공론화위 소수가 자의적으로 삭제할 수 있는 정보로 볼 수 있는가? 아니라고 본다.

공론화위 논의는 "어물전에서 생선값 흥정하는 모습 그 자체다." 딱 그 수준에서 논의되고 있다. 타협안으로 일부 언론이 수용을 강요하는 대안이 '소득대체율 44%와 보험료 13% 조합'이다. 수지 균형보험료인 21.8%보다 8.8%포인트 적게 부담하는 개편안이다. 개편 초기에는 4%포인트 늘어난 보험료 수입으로 재정안정을 달성한 듯한 착시 현상이 유발되나, 수지균형 보험료보다 훨씬 적게 거둠에 따라, 시간이 갈수록 미(未)적립부채가 크게 늘어난다. 미래세대 부담을 더 늘리는 개악안이라고 비판받는 이유다. 이 개편안이 진정 미래세대를 위한 개혁안이라고 믿는다면, 이 개편안의 미적립부채 증가 규모부터 공개하기 바란다.

개악안을 개혁안으로 둔갑시켜 21대 국회에서 통과시키려 할 경우, 엄중한 국민적인 심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필자가 속한 연금연구회는 이미 3차례에 걸쳐서, 언론을 통해 제기된 수많은 의혹들을, 시민단체나 일부 정치인의 입이 아닌, 공론화위가 직접 밝힐 것을 요구했다. 공론화위가 추진하는 개악안이 진정 개혁안이라고 믿는다면, 그동안 다수 언론이 제기했던 문제들의 공개적인 해명이 우선돼야 한다.

이 칼럼을 쓰는 와중에 김일천 전 복지부 국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국제 흐름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우리의 연금개혁 논의를 지켜보기 힘들다고 했다. 올해 만 90세인 그가 필자에게 남긴 말이다. "일본은 2020년부터 후세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도록 모든 사회보장제도를 고치고 있다." 우리가 연금을 배워 온 일본은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을 통합했으며, 18.3% 보험료에 소득대체율은 33∼34%(1942년에 도입한 연금제도의 평균 연금액이 129만원) 수준이다. 그러니 100년 뒤에도 연금 줄 돈 200조원(현재가치)이 있다. 외국의 실상이 이러함에도, 21대 국회에서 개악안을 통과시키려는 무리수를 둔다면, 공론화위를 주도하고 있는 소수가 지난 25년 동안 우리 사회에 끼쳐 온 해악들이 자연스럽게 알려지게 될 것 같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윤석명(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전 한국연금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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