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혜원의 문화路]원숙한 통찰로 빚은 바다풍경과 인간군상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koreanwave.asiatoday.co.kr/kn/view.php?key=20240521010010075

글자크기

닫기

전혜원 기자

승인 : 2024. 05. 21. 08:27

시우(時雨) 김영재 개인전...자연 거대함 품은 제주 주상절리 카메라에 담아
물때 기다려 절묘한 순간 포착...숟가락 조형으로 사회문제도 꼬집어
김영재 작가 인터뷰
사진작가 시우(時雨) 김영재의 개인전 '길 끝에'가 서울 종로구 인사1010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제주해안의 주상절리를 담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영재 작가./사진=송의주 기자
basic_2021
화산폭발이 만들어놓은 절경인 제주해안의 주상절리가 흑백 사진에 담겼다. 해안에 육각형 단면의 돌기둥들이 규칙적으로 붙어서 수직을 이룬 모습이 수평의 바다와 만난 풍경이다. 한 폭의 동양화 같은 바다 사진으로 유명한 시우(時雨) 김영재(77)의 작품들이다.

작가는 사람들이 볼 수 없는 제주 주상절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자 지프차 바퀴에 밧줄을 걸고 몸을 매단 채 절벽으로 내려갔다. 위험천만한 작업임에도 몸을 사리지 않고 강행해 자연의 거대함을 품은 주상절리의 민낯이 드러났다.

시우 김영재가 길 끝에서 만난 바다와 인간군상에 대한 성찰적 작업을 보여주는 전시 '길 끝에'가 서울 종로구 인사1010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수묵 맛 나는 바다 사진들과 숟가락으로 형상화된 인간군상 시리즈를 선보이는 자리다.

김영재 작가 인터뷰
김영재 개인전 '길 끝에' 전시 전경./사진=송의주 기자
김영재의 바다 풍경은 동양화의 운무산수화를 떠올리게 한다. 수묵 맛이 나는 사진으로 바다의 역동적인 기세를 잡아챈다. 잔잔한 해무를 배경으로 돌출된 돌덩이들은 언뜻 보면 유장한 산맥을 보는 듯하다. 작가의 섬세한 시선이 사진의 격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작가는 흑백사진에선 수묵의 맛을, 컬러사진에선 수묵담채화의 맛을 진국처럼 끓여낸다.
구르면서 깎이고 들이친 파도에 닳은 몽돌들이 물안개 위로 흑진주처럼 빛나는 작품이 눈길을 끈다. 주상절리 위로 큰 파도가 들이치고 나가면서 바닷물이 흘러내리고 잔잔한 거품이 일어난 모습을 포착한 작품도 신비롭다.

김영재 작가 인터뷰
김영재 개인전 '길 끝에' 전시 전경./사진=송의주 기자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이러한 작품을 위해 "물때를 기다린다"고 했다. 물이 들어올 때, 파도가 엄청 세게 칠 때를 기다려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다. 끝없는 인내심을 요하는 작업이다. 작품을 위해 30미터도 더 되는 절벽 아래로 홀로 내려간 적도 있다.
'고요-밤'이라는 제목의 작품은 차 안에서 새벽 두세 시쯤 촬영했다. 작가는 "잠이 오지 않던 어느 새벽,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을 장노출로 카메라에 담았다"고 말했다.

토털인테리어 건축자재 생산기업 세한프레시젼을 몸소 일군 장본인이기도 한 그에게 카메라는 인생의 고비마다 위안이 돼 준 존재였다. 카메라를 들고 바다로 향하면 모든 시름이 사라졌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카메라를 만지면 행복했다. 그는 작가노트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앞만 보고 달려 온 삶이다. 숨이 가쁠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예술은 나의 삶의 쉼표이자 나를 직시해 볼 수 있는 거울이 돼 주었다. (중략)물속에 빠지지 않고 수영을 하려면 물의 리듬을 타야 하듯 예술은 나의 삶의 리듬이 돼주었다."

김영재 작가 인터뷰
김영재 개인전 '길 끝에' 전시 전경./사진=송의주 기자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인간군상 시리즈도 소개된다. 작가는 어느 날 어느 날 황학동 중고주방시장에서 숟가락 더미를 보고 문뜩 인간군상을 떠올리게 된다. 생명을 이어가고 삶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숟가락을 들어야 하고 일을 해야 한다. 작가는 숟가락에서 인간 존재모습을 봤다. 의자 밑에 수북이 쌓여있는 숟가락 모습은 마치 돈, 명예,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아귀다툼의 정경이었다. 작가는 의자라는 자리에 기어오르기 위해 벌이는 전쟁터 같은 처연한 모습을 설치작품으로 형상화하고 사진으로 옮겼다.

작가의 숟가락 조형은 진화를 거듭해 어느 때부턴가 지구를 이루고, 한데 어우러진 인간군상의 형태를 띤다. 1980년대에 제작한 이응로 화백의 군상시리즈를 연상시킨다.

김영재 작가 인터뷰
김영재 개인전 '길 끝에' 전시 전경./사진=송의주 기자
그는 인간군상 시리즈를 통해 여러 사회문제점들을 꼬집고 싶었다. 환경문제라든가 요즘 세태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때로는 젊은 세대들에게 인생 선배로서 작품을 통해 조언도 전하고 싶었다. 수많은 숟가락들이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형상의 작품 옆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자신의 목표를 향해 일하고, 경쟁하고, 보다 나은 목표와 희망을 향해 오르는 인간 군상들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인간을 닮은 숟가락 하나하나가 저 높은 곳을 향해 도전을 하는 행렬이기도 하다. 도전은 젊음의 특권이기에 두려워하거나 실패에 움츠려들지 말고 용기를 갖고 앞으로 나아가는 청년세대가 되어주기를!!!" 전시는 21일까지.

전혜원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