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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최저임금 결정이 남긴 과제

[연재] 최저임금 결정이 남긴 과제

기사승인 2024. 07. 23.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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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식의 '질서경제학'
김강식 교수 사진
김강식 (한국항공대학교 경영학부 명예교수)
※필자는 독일 만하임대학교 경영학 박사로 한국질서경제학회 회장 역임했다. 질서경제학은 오이켄(W. Eucken), 뵘(F. Bohm) 그리고 그로스만(H. Grossmann-Doerth) 등 독일 프라이부르크(Freiburg) 대학교 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올바른 경제 질서'가 무엇인지 탐구해 온 경제학 연구의 한 흐름이다. 당연히 그런 올바른 질서의 구현을 위해 노력하는 실천적 측면을 지닌다. 질서경제학은 사회질서의 구성원리를 분석하는 패러다임이며, 행동질서, 행동규칙질서, 그리고 국가질서를 연구한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30원으로 결정되었다. 이는 금년 9860원에서 170원 인상된 금액으로 1988년 최저임금 제도 시행 후 처음으로 시간당 1만원을 넘긴 것이다. 그런데 2023년 정작 전체 근로자의 13.7%에 해당하는 301만1000명의 근로자가 법으로 정해진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고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으로 고용하거나 된다는 것은 대부분 최저임금 지급이 가능하지 않는 열악한 사업체 사정과 최저임금을 받는 것이 가능하지 않는 취약 근로자들의 사정이 맞물려서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사업체들은 낮은 수익성으로 최저임금 수준이 임금 지급능력을 넘어서는 사업체들이고, 여기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노동시장에서 취업경쟁력이 취약하여 최저임금 수준에서는 취업이 어려운 근로자들이다. 저학력자, 미숙련자, 청소년, 여성, 장애인, 노인 등 노동 약자들의 경우 현재의 최저임금 수준에서는 취업 기회가 봉쇄되어 있어서 스스로 급여를 낮추어서 일자리를 찾고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 문제는 시장임금과 괴리된 비현실적인 최저임금 수준이 야기한 것이다. 높은 최저임금은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와 최저임금법을 위반하는 사업체를 양산하고 있다.

최저임금제도는 정부가 최저임금을 결정해서 기업에게 그 부담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명확히 정부 규제다. 최저임금 규제가 강할수록 최저임금과 시장임금과의 괴리는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에는 최저임금 지급이 가능하지 않은 사업체들이 증가하고, 동시에 최저임금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는 근로자들도 증가하게 된다.

최저임금제도의 기본 목적은 노동시장에서 경쟁력이 약한 취약근로자들을 보호하는 데 있다. 그런데 현재의 최저임금은 오히려 다수의 노동 약자들을 최저임금제도의 보호영역 밖으로 내몰고, 방기하고 있다. 높은 최저임금으로 인해 300만이 넘는 근로자가 최저임금제도의 울타리 밖으로 쫓겨나 있으며, 이 외에도 일자리를 구하는 수많은 노동 약자들에게 최저임금은 노동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어 취업기회를 차단하고 있다. 또 이미 고용된 최저임금 근로자들도 원하는 시간만큼 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고, 키오스크, 서빙 로봇, 자동화기기와 같은 인력대체시스템의 도입으로 고용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최저임금제도의 울타리 밖으로 밀려난 최저임금 미만 사업체와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들은 주로 수익성과 지불능력이 낮은 업종과 소규모 영세 사업체에 집중적으로 분포해 있다.

업종으로는 농림어업(43.1%), 숙박·음식점업(37.3%), 협회·기타서비스업(25.3%), 보건·사회복지업(21.7%) 등에서 최저임금미만 비율이 특히 높다. 사업체 규모로는 5인 미만 사업체의 근로자 10명 중 3명 이상(32.7%)이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다.

근로자 특성으로는 60세 이상 고령근로자의 최저임금미만 비율이 35.5%로 매우 높아서 전체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의 45.0%가 60세 이상 근로자들이다. 이미 충분히 높은 수준에 있는 최저임금을 사업체의 수익성과 지급능력, 그리고 근로자의 연령대별 특성 및 노동시장 경쟁력 등과 무관하게 모든 사업장과 모든 근로자에게 하나의 최저임금으로 동일하게 적용하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최저임금 미만 근로자들이야말로 노동 약자로서 바로 최저임금제도의 본질적 대상이라 할 수 있다. 최저임금제도가 제대로 기능하려면 이들 노동 약자들을 반드시 최저임금의 틀 안으로 포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최저임금미만 비율이 적정수준(예: 3%)에 도달할 때까지 최저임금 인상 수준을 적정선으로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최저임금이 상황에 따른 유연성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모든 사업체와 모든 근로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현재의 하나의 경직적 최저임금에서 업종과 규모 등 사업체의 사정과 노동시장 경쟁력과 같은 근로자의 사정을 고려한 복수의 맞춤형 최저임금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런 변화는 결국 과도한 정부 규제의 완화이며 최저임금과 시장임금의 현저한 격차를 감소시켜 최저임금의 부작용을 감소시킬 것이다.

최저임금의 유연화는 사업체의 업종과 규모에 따라 근로자 소득격차를 확대하고, 저임근로자의 생활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지불능력이 취약한 영세 사업체에게 근로자 생계를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 부분은 임금이 아니라 복지로 접근해야 한다. 따라서 이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이지, 영세 사업체에게 그 책임을 떠넘길 일은 아니다.

최저임금만으로 근로자의 생계유지가 곤란하다면 정부가 근로장려세제 등 조세정책과 노동복지정책, 사회복지정책 등을 활용해서 최저임금과 생계비의 갭을 메워야 할 것이다.

김강식 한국항공대학교 경영학부 명예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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