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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 칼럼] 한순간 ‘정치실패’, 진통 끝 나온 ‘바른 정책’ 좌절시켜

[김이석 칼럼] 한순간 ‘정치실패’, 진통 끝 나온 ‘바른 정책’ 좌절시켜

기사승인 2024. 07. 28.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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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 논설심의실장
교과서 경제학에서 정부의 정책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개념이 '시장 실패'와 '정부 실패'다. 개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손실을 주는 것을 감안하지 못한 채 예컨대 강을 오염시키는 생산 활동을 과도하게 하는 것을 '외부불경제'라고 부르고 이를 '시장 실패'로 본다. 이런 시장과 정부 실패 개념에 익숙한 경제학자들이 놓치기 쉬운 게 '정치 실패'다. 이를 간과하면 올바른 정책이 제시됐더라도 실제로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경제학자 피구(Pigou)는 그런 오염을 발생시키더라도 사람들에게 필요한 재화를 생산하기 때문에 이런 생산을 아예 중단시키기보다는 생산을 적정선으로 줄이도록 '피구세(Pigovian tax)'를 부과할 것을 제안했다. 물론 피구세 대신 강에 재산권을 부여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일 것이다. 강의 소유자가 오염 피해를 묵과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탄소배출권 거래제'처럼 오염 피해를 적정선으로 제한하고 그 범위 안에서 오염을 배출할 권리를 사고파는 정책이 실행되고 있기도 하다.

반대로 이런 외부불경제가 없음에도 정부가 가격 등에 간섭하여 경제 활동을 왜곡하기도 한다. 이를 정부 실패라고 부른다.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가 전기 요금에 대한 간섭이다. 전기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원료의 가격이 비싸져 전기 요금이 올라가면, 사람들은 더 아껴 쓰면서 적응해 간다. 그런데 정치권이 간섭해서 사람들이 살기 힘들다면서 요금을 현행대로 강제하면 사람들은 전기를 절약할 생각을 하지 않고 전기 수요도 줄지 않고 공급도 늘지 않는다.

노동시장에서도 각종 규제가 노동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거나 시도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경직적인 최저임금제와 각종 고용과 해고와 관련된 규제들과 '노란봉투법'처럼 노조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들이다. 얼핏 생각하면 기업 등 고용하는 이들이 지불해야 할 최소한의 임금을 정해놓고 이를 올릴수록, 그리고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노조의 권력을 강화할수록 노동자들의 형편이 나아질 것처럼 착각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현재 최저임금 이하로 고용되고 있는 숫자만 해도 전체근로자의 13.7%인 3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들을 불법 고용으로 내몰 뿐이다. 최저임금을 더 높일수록 더 많은 이들이 불법 고용으로, 즉 더 불안한 상태로 내모는 것이 될 뿐이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이들의 형편이 개선되는 것이 전혀 아니다. (김강식, '최저임금 결정이 남긴 과제' 아시아투데이, 7월 24일자)

이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음에도 더불어민주당이 다시 '노란봉투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러나 주한미국상공회의소의 경고처럼 "불법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을 제한하는 법안이 시행되면, … 투자처로서의 한국의 매력을 저하시킬" 것이다. 노조가 파업을 해도 청구할 수 있는 손해배상이 종전보다 제한되는 상황이 되면 한국을 탈출할 생각부터 하게 되지 않겠는가. 그 결과 좋은 일자리만 줄어드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노동시장의 임금과 고용 상의 경직성을 줄이고 반대로 탄력성을 높여주는 한편, 최종수단이 되어야 할 파업을 일삼는 것을 제한하는 노동시장 정책은 분명 올바른 방향의 바람직한 정책일 것이다. 바로 이런 노동시장 정책이 실제로 입법화되고 시장에 정착될 기회가 우리나라에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일종의 '정치 실패'로 인해 그렇게 되지 못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외환위기 당시 전경련을 대표해서 기업구조조정을 주도했던 손병두 전 전경련 부회장과 구조조정 실무를 도맡았던 이병욱 당시 전경련 팀장으로부터 당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손병두 전 부회장이 가장 아쉬워했던 대목은 YS 정부 시절 외환위기가 오기 전에 추진했던 노동개혁이 '정치 실패'로 좌절된 부분이었다.

YS는 노동개혁을 위해 1996년 4월 정부와 노조, 사용자, 그리고 학계 출신의 공익위원으로 구성된 '노사관계개혁위원회'를 출범시켜 진통 끝에 공익위원들의 절충안을 중심으로 정부가 노동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노조의 정치활동 금지, 복수노조 금지, 제3자 개입금지 등의 조항을 삭제하되 정리해고제, 탄력근로제, 근로자파견제 등을 허용함으로써 노사 간 균형을 맞춘, 비교적 잘 된 법안이었다"고 한다. (손병두, "1996년 노동법 날치기 없었다면 IMF 갈 일도 없었을 것", 중앙선데이 2023.11.25.)

국회통과만 남겨둔 상태에서 김종필(JP) 자민련 총재와 김대중(DJ) 새정치국민회의 총재로부터도 다음 해 1월 국회통과에 대한 협조를 약속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1996년 12월 26일 새벽 6시 신한국당이 단독으로 노동법 개정안을 '날치기' 통과시키는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총파업과 야당의 가세가 이어지자 결국 YS는 다음 해 1월 21일 3당 영수회담 후 '노동법 재개정'으로 전격 후퇴했다. 이해할 수 없는 날치기 시도와 같은 한순간의 '정치 실패'로 오랜 진통 끝에 탄생한 올바른 정책도 좌절되고 말았던 것이다.

정치 실패'란 범주를 정치권이 제대로 인식하고 경계하도록 한다면 이런 일의 반복을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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