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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북한 외교관 귀순이 통일에 주는 시사점

[칼럼] 북한 외교관 귀순이 통일에 주는 시사점

기사승인 2024. 08. 0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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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기 전 고려대 교수
조영기 전 고려대 교수
최근 정부는 리일규 주쿠바 북한대사관 정치 담당 참사가 지난해 11월 한국에 귀순한 사실을 밝혔다. 김정은 집권 이전에는 북한 엘리트층의 한국 선택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북한 엘리트층의 북한 이탈이 많아지고 있다. 지난해에도 10여 명의 북한 엘리트층이 한국행을 선택했다고 한다. 이런 내부 균열 조짐이 북한 체제의 균열을 촉발할 촉매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고, 통일한국의 여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조짐의 파장을 진단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물론 북한 주민들의 한국 선택의 동기는 시대에 따라 달랐다. 1980년대~1990년대에는 배고픔이 탈북의 동기였다면, 2000년대에는 한류의 영향으로 자유를 찾아 한국행을 선택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외교관, 해외 파견 노동자 등 해외체류 경험이 있는 엘리트층의 한국행이 눈에 띤다. 이들이 해외에 체류하면서 북한의 세습통치와 폭압통치의 부당성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이런 엘리트층의 이탈 현상은 해외체류로 체득된 북한체제에 대한 염증, 자유세계에 대한 염원, 평양 귀환 후 자녀의 미래와 교육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판단된다.

또한 국제사회의 제재로 외교활동의 입지가 더욱 좁아지고 북한당국이 요구하는 (불법)외화벌이가 용이하지 않은 것도 탈북 요인 중 하나다. 최근 리일규 참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들의 열악한 처우와 한계를 잘 토로했다. 자신의 처지를 '넥타이 맨 꽃제비'에 불과하다는 비유로 한탄했다. 이 한탄은 김정은 체제가 흔들리는 '나비의 날개짓'과 같은 징조가 엿보인다. 바로 나비의 작은 날개 짓이 거대한 폭풍으로 작동할 나비효과(butterfly effect)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 이전에도 북한은 외부 정보를 '반(反)사회주의 또는 비(非)사회주의문화'로 규정하고, 정보 유입을 통제·차단하기 위해 형법과 행정처벌법과 같은 법·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해 강압정책을 시행해 왔다. 이런 조치들에도 불구하고 근절되지 않고 오히려 다양한 도구와 수단을 통해 정보가 유입되고 은밀하게 유통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외부정보와 문화의 유입·유통이 북한주민들의 의식과 가치관을 변화시켜 체제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외부정보와 문화의 대부분이 한국과 관련된 '한류(韓流)'라는 점에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북한은 '(소위) 3대 사회통제 악법'을 제정했다. 3대 악법은 '반동사상문화배격법(2020)', '청년교양보장법(2021)', '평양문화어보장법(2023)'이며, 3대 악법은 특히 한류세대들의 한류문화를 차단·통제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한류세대는 정보통신기기 조작에 능숙한 세대로 한류 활용·확산의 중심 세대다. 따라서 북한은 한류 확산이 나비효과를 일으킬 높은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강력한 단속에 나섰다. 북한이 강력한 통제장치를 마련하고 처벌 수위를 높이는 이면에는 한류 확산이 북한체제를 직간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물론 북한은 체제위협의 요인을 차단하기 위해 노동당선전선동부 중심으로 촘촘한 통제장치와 감시조직이 가동되고 있어 외견상 매우 안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23년 말 김정은은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한을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규정하고 통일·민족의 개념을 삭제한 배경에는 한류 확산의 위험성을 간과할 수 없었다. 즉 한류 때문에 북한 중심의 사회주의로의 적화통일이 불가능하다는 현실 인식을 받아들인 것이며, 한류가 체제 위협적 요소로 작동하고 있다는 불안감도 한몫했다. 반면 우리는 이런 북한의 자기 고백이 가져올 나비효과에 대비해야 한다.

북한이 주체사상을 기반으로 제공하는 각종 선전선동의 콘텐츠는 재미없다. 하지만 한류는 재미있어 더 매력적이라는 점이 한류의 핵심 코드다. 이 때문에 북한의 한류세대는 한류에 환호하고 동경하게 된다. 반면 북한 김정은 입장에서 한류가 하나의 대안문화로 정착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문화가 '한 사회의 주요한 행동양식이나 상징체계를 의미한다'는 사실에서도, 남북이 80년 가까이 사상 문화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한류가 대안문화로 정착되는 현실을 용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은 '3대 사회통제 악법' 제정을 통해 '오빠야', '자기야', '남친' '여친'과 같은 한국식 표현 차단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처럼 북한 당국이 한국식의 사소한 표현에 대해 극히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까닭은 이런 편현들이 북한주민들 사이에서 유행어가 돼 하나의 새로운 공동지식(common knowledge)을 형성하고, 새로운 대안문화로 정착으로 인한 높은 위험성 때문이다. 공동지식이란 '내가 한 일을 네도 알고, 네가 한 일을 나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너도 나도 남한 콘텐츠를 접했다는 인식 공유로 한류 접근에 거리낌이 없어지고 새로운 대안문화로 진화·발전한다는 의미다.

북한에서 건강한 대안문화의 형성이 체제변화의 단초가 되고 통일한국의 기틀을 다진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북한 엘리트층의 한국행뿐만 아니라 다양한 콘텐츠로 만든 공동지식을 만들고 공동지식의 날개짓이 통일한국의 토대를 형성하도록 해야 한다. 이는 북한주민들의 고통을 조속히 경감시켜 주고 통일의 여정을 앞당기는 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의 체계적 종합적 정책개발과 집행이 요구된다.

조영기 전 고려대 교수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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