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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칼럼] 온 나라를 착각에 빠뜨린 ‘충실의무’ 소동

[최준선 칼럼] 온 나라를 착각에 빠뜨린 ‘충실의무’ 소동

기사승인 2024. 08. 05.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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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제21대 국회에서 이용우 의원이 발의한 상법개정안이 제22대 국회에서 정준호의원 안으로 재발의됐다. 박주민 의원도 21대 국회에서 발의한 상법개정안을 제22대 국회에서 재발의했다. 두 법안은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조항인 제382조의 3,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에서 '회사를 위하여'를 고쳐,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회사를 위하여'(이용우 의원안) 또는 '회사와 총(總)주주를 위하여'(박주민 의원안)로 바꾸자는 것이다.

위 법안들은 '이사의 충실의무(duty of loyalty)'가 뭔지나 알고 발의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이사의 충실의무는 '최선을 다해 회사에 충성할 의무'가 아니다. '이사와 회사 간의 이해가 충돌될 때 회사의 이익을 우선해야 할 의무'가 충실의무다. 이 개념은 미국, 일본, 한국에 공통적인 개념이다.

이사, 특히 대표이사는 일단 수임인으로서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써 회사의 업무를 집행할 의무가 있다. 그 외의 의무로서, 이사는 회사 경영에 관한 전권을 행사하는 지위에 있기 때문에, 그 지위를 이용해 회사 재산을 자기 자신 또는 제3자를 위해 가로채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충실의무다. 상법 제382조의 3에 선언적 규정을 두고 있고, 그 구체적 실천조항으로 △회사의 영업과 경쟁이 되는 영업금지(상법 제397조), △회사의 기회 및 자산의 유용금지(상법 제397조의 2), △이사 등과 회사 간의 거래 금지(상법 제398조), △이사의 보수 결정(상법 제388조) 등이 상법에 규정돼 있다. 이들 조문들은 이사가 회사의 이익을 해치고 자신의 이익을 도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대표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들 조문에 한정되지 않고 기업 경영의 전 국면에서 이사는 회사의 재산을 빼돌려서는 안 되고, 이와 같은 충실의무를 위반하면 동시에 배임죄와 횡령죄에 해당될 가능성이 크다.

상법개정론자들이 충실의무가 문제 된 사건으로 에버랜드 전환사채발행사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사건, LG에너지솔루션 물적 분할에 이은 이중상장 사건을 예로 든다. 최근에는 두산그룹의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의 자회사에서 두산로보틱스의 자회사로 옮기는 것도 전형적인 충실의무 위반사례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위 4개의 사례 중 어디에도 이사가 회사재산을 침해하고 개인적으로 이익을 빼돌린 건 없다. 이사는 이사회 또는 주주총회 결의를 집행했을 뿐이고, 이사들이 회사 또는 그룹의 구조조정을 합법적으로 수행했으며, 충실의무를 다했다는 말이다. 이들 사건으로 어느 누구도 민사적 손해배상이나 형사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러므로 상법개정론자들이 충실의무조항을 개정하자는 주장은 참으로 어이없는 발상이며, 상법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주장이다.

물론 이사가 그 지위를 이용하여 회사의 이익을 희생하면서 자기 자신의 이익을 도모해서도 안 되고 제3자의 이익을 도모해서도 안 된다. 이 제3자에는 주요주주나 지배주주도 포함한다.

그렇다면 상법개정론자들 주장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들의 주장을 경청하면, 이사가 회사재산을 빼돌렸다는 얘기가 아니라, 회사 구조조정 과정에서 회사 또는 지배주주가 큰 이익을 보는 반면, 소액주주는 피해를 봤다는 것이고, 이걸 바로잡아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사의 충실의무 문제가 아니다. 이사의 충실의무 규정에 뜻 모를 '비례적 이익'이라는 어휘 하나 추가한다고 해서 지배주주가 이익을 보고 소액주주가 피해를 보는 상황이 개선될 리가 없다. '총주주'라는 단어를 삽입해도 마찬가지다.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 아래서는 주주우선주의(shareholder supremacy)가 기본이며, 주주우선주의 아래서는 회사의 이익이 바로 총주주의 이익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개정안들은 포커스가 맞지 않고 상법 체계에도 맞지 않는 법안은 혼란을 일으킬 뿐이다.

그럼 해결책은 무엇인가? 이사 뒤에는 이사를 움직이는 주주가 있다. 지배주주나 주요주주가 그들인데, 이들은 회사에게는 큰 도약의 기회가 된다고 판단하여 이사에게 구조조정을 실행하라고 지시한다. 상법개정론자들은 이때 이사가 지배주주의 뜻에 반하더라도 소액주주에게 피해가 가는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거부하라는 의미가 된다. 주로 주주행동주의자들과 단기투자자들은 기업구조조정에 반대한다. 단기에 투하자본을 회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기업의 주인으로서 주식을 매도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지배주주나 주요주주는 그룹과 회사의 미래를 위해서는 장기적 전략 하에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다. 이처럼 주주의 성분에 따라 이해관계가 극심하게 엇갈린다.

이사는 기본적으로 주주총회의 결의를 집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총회의 결의가 회사 또는 지배주주에게 대규모의 이익을 가져오고 소액주주들에게는 아주 근소한 이익 또는 오히려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문제다. 이때 회사의 수임인인 이사로서는 개인인 지배주주 또는 주요주주가 아닌, 회사 자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집행할 수밖에 없다.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주주들에게는 회사에 대한 주식매수청구권이 주어질 것이다. 그래도 이사가 업무를 잘못 처리해 억울하게 손해를 봤다면 소액주주들은 이사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대표소송을 제기하면 된다. 원천적으로 총회결의가 법령에 위반된다면 결의무효확인의 소를 제기해 총회의 효력을 다투면 된다. 미국에서도 기업 구조조정이나 M&A에서 합병 비율 등에 문제가 있을 때 '전체적 공정성 테스트(entire fairness test)'에 따라 심히 불공정한 경우에는 법원에서 이를 수정하는 판결이 가끔 나오고 있다. 상법을 개정할 필요는 없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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