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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 칼럼] 놀라운 한국 양궁, 자유경쟁 통한 ‘발견’ 덕분 아닐까

[김이석 칼럼] 놀라운 한국 양궁, 자유경쟁 통한 ‘발견’ 덕분 아닐까

기사승인 2024. 08. 0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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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 논설심의실장
지난주 휴가를 보내면서 파리 올림픽을 밤늦게까지 라이브로 마음껏 즐겼다. 손에 땀이 나게 만드는 접전 속에서도 우리나라 양궁선수들이 심리적 압박을 이겨내면서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다. 올림픽 양궁에 걸린 5개 금메달을 모두 쓸어 담고, 여자양궁은 올림픽 단체전 10연패를, 그리고 남자양궁은 올림픽 단체전 3연패를 이루었다. 필자도 외신기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왜 한국 양궁이 이토록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강한가?"

가장 먼저 나온 이야기는 '주몽의 후예'론이다. 이번 2024 파리올림픽에서 펜싱과 사격 그리고 양궁 등 칼, 총, 활 등 무기를 다루는 분야에서 금메달이 연이어 나오자 '주몽의 후예'인 한국인들의 DNA 속에 무기를 잘 다루는 능력이 있다는 우리의 귀를 간질이는 듣기 좋은 설명이 나왔다.

그러나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아슬아슬한 승부가 펼쳐지는 외국선수들과의 경기들을 보면서 '주몽의 후예론'에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려웠다. 사선(射線)에서 경쟁하는 외국 선수들도 우리 선수들 못잖게 "텐, 텐" 혹은 "나인"을 번갈아 쏠 만큼 기량이 출중했다. 그들도 가히 "주몽의 후예"가 아니더라도 활을 잘 쏘는 "로빈 후드의 후예"로 불릴 만했다.

양궁 경기 마지막을 장식한 남자 단식 결승에서 김우진 선수가 미국의 엘리슨 선수를 5:5 동점이 되어 슛-오프 1발을 쏘고 그야말로 간발의 차로 금메달을 땄다. 그런 한 경기만 보면 천운(天運)이었다면서 안도의 한숨을 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운으로 돌리기에는 한국 양궁의 성취는 너무나 불가사의하다. 한국이 세계 양궁경기를 석권하자 세계양궁협회가 경기 결과에 우연적 요소가 더 작용하도록 경기 규칙을 바꾸어왔다. 더구나 종잡을 수 없는 바람이 화살이 과녁으로 가는 길을 방해하는데 이를 제대로 다 읽어내기는 힘들다. 그런데도 이런 거의 일어날 수 없는 확률을 모두 이겨내고 대한민국 양궁이 올림픽에서 10연패와 3연패를 했다면,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외신기자들뿐만 아니라 필자도 한국이 올림픽에서 양궁의 메달을 쓸어 담는 이유를 저절로 묻게 되는 것 같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설명이 과거 성적이나 연고 등에 얽매이지 않는 '공평하고 치열한 경쟁'론이다. 확실히 '주몽의 후예'론보다는 설득력이 있다. 이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지난 도쿄올림픽 때 3관왕을 차지한 안산 선수 등 당시 국가대표 전원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할 정도로 철저하게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성적을 위주로 한 치열한 선발전을 통해 새로운 스타들이 계속 나오는 국가대표 선발 '경쟁' 시스템에 주목한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 축구에 불러일으킨 새바람도 결국 이런 연고주의를 타파하고 경쟁 시스템을 잘 도입한 덕분이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최근 세계적 스타 플레이어를 배출하면서도 아쉽게도 올림픽 출전에 실패한 한국 축구가 혹시 히딩크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조짐은 없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공공선택론을 전공하는 경제학자들은 정치적 연고주의를 자유로운 시장경제와 대비하고 그 폐해를 강조한다.(랜들 홀콤, '자유주의와 연고주의')

이런 경쟁 시스템의 작동이라는 설명에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다른 나라도 이런 선발전을 거칠 텐데 예측하기 어려운 바람 속에서 상대 선수의 만점 획득에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으로 만점을 더 많이 쏘아내는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와서 불가능할 것 같은 대회 10연패가 가능한가? 다른 나라에서 하는 것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어야 이런 결과가 설명될 수 있다.

우선은 정부 기관이 아닌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현대차가 후원하는 대한양궁협회가 이런 경쟁적 시스템을 만들고 여러 새로운 시도를 실험해 보고 효과가 있었던 방법들을 발견하고 축적해 왔다는 사실에 눈길이 갔다. 관중들이 있는 야구장에서의 양궁 경기 등 때로는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새로운 시도를 했다고 한다. 이번 파리올림픽을 앞두고는 바람의 풍향을 사람보다 더 잘 읽는 AI 슈팅 로봇까지 도입해서 선수들과 훈련을 시켰다고 한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서야 한국 양궁의 놀라운 성적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런 한국 양궁의 사례는 자유로운 시장경쟁이 그런 경쟁을 원천적으로 막거나 매우 제한적으로만 허용하는 시스템보다 월등한 성적을 내는 것과 비슷하다. 시장경제는 시장에 자유롭게 참여해서 가격, 디자인, 제조방식 등에서 여러 새로운 기업가적 모험을 허용하고, 그 결과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유효한 방법들이 무엇인지 발견해 나간다.

한마디로 한국 양궁의 성공은 최소한 다른 국가들보다 이런 경쟁을 통한 발견을 잘 활용한 덕분으로 보인다. 거꾸로 기업가들로 하여금 올림픽 금메달에 해당할 정도의 큰 성공을 위해 모험적 도전을 기꺼이 하도록 만들 때, 그래서 세계의 소비자들에게 어필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꾸준히 나오게 만들 때 대한민국 경제도 우리의 양궁처럼 더욱 우뚝 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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