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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김주원의 ‘요즘 미술’]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질문

[큐레이터 김주원의 ‘요즘 미술’]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질문

기사승인 2024. 08. 1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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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큐레이터·상명대 겸임교수
아시아투데이는 매주 월요일 본란에 김정학(전 대구교육박물관장)의 박물관 이야기, 윤일현(시인)의 시 이야기, 김주원(큐레이터, 전 대전미술관 학예실장)의 명화감상 이야기, 그리고 신현길(문화실천가)의 지역문화콘텐츠 이야기를 매주 돌아가면서 싣는다. 이번에는 두 번째 김주원의 명화감상 이야기를 '큐레이터 김주원의 '요즘 미술''이란 이름으로 게재한다. <편집자 주>

두 달 전쯤, 2022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를 보았다. 영화는 미국의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유명한 낸 골딘(Nan Goldin, 1953~)의 삶과 예술, 사회운동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아름다움'의 진실에 대한 예술가의 절박하고 처절한 질문과 투쟁을 담고 있는 이 영화는 2018년 3월 낸 골딘을 중심으로 한 행동가 그룹 '페인(P.A.I.N.)' (Prescription Addiction Intervention Now)이 벌인 시위 장면으로 시작된다. 뮤지엄에서 전시 작품을 보고 있는 관람객들 사이로 전시장 바닥에 흰색의 알약통을 투척하며 시체처럼 눕는 이들의 첫 기습시위는 같은 해 7월 하버드대 미술관, 2019년 2월 구겐하임미술관, 그리고 다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형태를 달리하며 계속되었다.

낸 골딘과 '페인' 그룹의 시위 장소가 세계적인 메이저 뮤지엄인 이유는 이들 기관에 막대한 기부금과 작품을 기증해 온 새클러 가문의 마약성 진통제 오피오이드(Opioid) 스캔들 때문이다. 오피오이드는 뇌에 보내는 신호를 차단해 극심한 통증을 완화하는, 모르핀이나 헤로인 성분의 마약성 진통제의 총칭이다. 새클러 가는 자신들의 소유인 제약회사 퍼듀 파마(Purdue Pharma)를 통해 1996년 시판을 시작한 오피오이드계 진통제인 옥시콘틴을 공격적으로 판매해 왔다. 수술 후 중증 환자나 암 환자 등에 주로 처방되는 이 약은, 중독성이 강하기로 유명하다. 정신착란, 호흡 저하 등의 부작용으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지난 20년 동안 거의 50만명의 미국인이 오피오이드 진통제 중독으로 사망했음을 발표할 만큼 치명적인 위험성이 강한 약이다.

낸 골딘 자신도 옥시콘틴 중독자였다. 오랫동안 다친 손목으로 고통스러웠던 낸 골딘은 2014년 독일 베를린에서 왼쪽 손목의 건염 치료를 위해 손목 수술을 받고 처음으로 옥시콘틴 처방을 받았다. 의사의 처방대로 정확히 복용했지만 마약 중독 이력이 있는 환자에게 보다 빠른 중독성을 발휘하는 탓에 낸 골딘은 이내 옥시콘틴에 중독되었다.

낸 골딘은 "처음 약을 받았을 때는 40mg이었지만 내게는 너무 강했다. 약은 나를 메스껍고 어지럽게 했다. 이후 나는 하루에 450mg 이상을 섭취하게 되었고 나는 다시 진통제에 중독되고 말았다"고 고백했다. 이렇게 옥시콘틴에 중독된 그는 약 2개월간의 재활 치료 후 1년여 만인 2015년에야 정상인으로 돌아왔다.

재활원에서 나온 후 옥시콘틴이 헤로인과 유사한 성격의 약품이자 모르핀보다 두 배나 더 강력한 활성 성분이라는 사실과 이 중독성 강한 마약과 같은 옥시콘틴이 세계 주요 뮤지엄과 학술 연구단체를 후원하는 세계 최고의 자선가 중 하나인 새클러 가문 소유의 제약회사 퍼듀제약(Purdue Pharma)에서 제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마약성 진통제로 인한 50만명의 죽음과 '유혈사태'가 '아름다움'의 전당인 미술관 등에 기부와 기증이라는 아름다운 행위로 뒤바뀌어 감춰지는 참혹한 현실을 확인한 것이다.

끔찍한 상처와 고통을 잊게 하는 이 중독성 강한 약은 어쩌면 잠시 많은 이들에게 아름다운 순간을 안겨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순간의 아름다움이 죽음과도 같은 유혈사태를 동반하고 있음을 체험적으로 알았던 낸 골딘은 이 마약성 진통제의 폐해와 실상을 알려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활동했으며, 새클러 가의 지원으로 세워진 세계 각지의 미술관·박물관에서 그 이름을 지우도록 요구했다.

이후 낸 골딘은 자신의 회고전을 준비 중이던 런던 국립초상미술관에 예정되어 있던 새클러의 기부금을 거부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런던 국립초상화미술관은 새클러의 기부금 130만 달러(17억원)를 거부했으며, 이를 계기로 세계의 주요 미술관·박물관들이 하나둘씩 새클러 가문의 기부금과 작품 기증을 거부하고, '새클러'의 이름으로 증축, 개관되었던 전시실과 예술센터 등에 명칭을 지우거나 바꾸기 시작했다. 낸 골딘은 영화 속에서 "사진은 내가 두려움을 헤쳐나가는 방법이었다 (Photography was always a way to walk through fear)"고 말한다.

그녀가 말하는 사진은 바꿔 말하면 '예술' 혹은 진정한 '아름다움'일 수 있을 것이다. 낸 골딘의 유형사태를 막고자 한 예술적 행위는 그녀가 두려움을 헤쳐 나가는 방법이었다. 이 같은 낸 골딘의 용기 있는 예술행위는 우리가 보지 못한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한다.

/큐레이터·상명대 겸임교수


김주원 큐레이터는…

2007년 3월 ~ 2016년 2월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학과(박사)를 졸업했다. 학위논문은 "1945년 이후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 담론 연구 - 포스트식민, 국제주의, 정체성 문제를 중심으로"다. 현재 상명대학교 조형예술전공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문화역서울284 전시예술감독,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일본 기타큐슈 현대미술센터(The Center for Contemporary Art KITAKYUSHU, CCA 약칭/Kitakyushu in Japan) 초청펠로, 2009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Cheongju International Craft Biennale2009) 수석큐레이터, (재)유영국미술문화재단 학예연구실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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