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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 대령 한미동맹 상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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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원 기자

승인 : 2015. 06. 05. 06:28

현충일 60주년 기획...박근혜 대통령 방미 앞두고 한미서 새롭게 부각...6일부터 30일까지 전쟁기념관서 사진전, 국방부 영관장교 독후감 공모전, 기념우표·영화제작 계획...유일 혈육 누나 윌라 김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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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으로서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영웅인 김영옥 미국 예비역 육군 대령은 혁혁한 전공과 사회봉사 활동으로 최고훈장을 한국 정부로부터 2003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사진) 프랑스 정부로부터는 2005년 최고무공훈장 레지옹 도뇌르 훈장, 이탈리아 정부로부터는 십자무공훈장·동성무공훈장을 받았다. / 사진=김영옥평화센터 제공
한국계 미군으로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 대령(2005년 작고)이 한미동맹의 상징으로 재조명되고 있다.(아시아투데이 2014년 6월 18일자 1면·5면 단독보도 참조)

2차 세계대전에서 전설적 전쟁 영웅으로 칭송받던 김 대령은 아버지의 나라를 위해 다시 군복을 입고 한국전쟁에 참전해 중상까지 입으면서 38선 중부전선을 60km나 북상시켜 미국 역사상 전쟁 중에 유색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대대장 지휘관으로 특진했다.

한국전쟁 중 500명의 전쟁 고아를 지원했던 김 대령은 전후에도 미국으로 입양된 고아들을 돌봐 ‘전쟁 고아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한국군 군사고문으로 전시동원계획 개편과 한국군 최초 미사일 부대 창설에도 기여했다.

6월 호국보훈의 달과 60주년 현충일, 한국전쟁 발발 65주년을 맞는 올해 마침 박근혜 대통령이 오는 14일부터 19일까지 미국 방문과 함께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어 김 대령이 한미동맹의 상징적 인물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김 대령은 한국전쟁에 참전하느라 부인과 헤어져 현재 유일한 혈육은 세계적 의상디자이너인 누나 윌라 김(Willa Kim·98) 여사 밖에 없다. 윌라 김 여사가 생존해 있을 때 김 대령과 김 여사 삶을 통해 한미 혈맹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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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전쟁영웅 김영옥 미국 예비역 육군 대령의 평화정신과 사회봉사 활동의 일대기는 2011년 한국의 초등학교 5학년 국어교과서에 수록돼 자라나는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들에게 잔잔한 감동과 교훈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 사진=김영옥평화센터 제공
이영만(58·예비역 공군 중장·공사 27기) 사단법인 김영옥평화센터 이사장은 4일 오후 “김 대령의 한미동맹에 대한 가교 역할과 진정한 군인으로서 리더십을 기리기 위해 현충일인 6일부터 국방부와 함께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2층에서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 사진전을 30일까지 연다”고 밝혔다.

이 이사장은 “김 대령이 전쟁 중에 보여줬던 인도주의와 평화주의 정신, 헌신과 겸손, 용맹함을 미군뿐만 아니라 일본군, 전 세계 군인들이 존경하며 배우고 있다”면서 “국방부와 함께 일선 영관 장교들을 대상으로 지난 4~5월 두 달 동안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 독후감 공모전을 실시했으며, 이달 심사를 거쳐 다음 달 시상식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이사장은 조만간 한국 정부수립 이후 국제무대에 세운 한국 최초의 해외동포연구소이며, 미국 역사상 첫 한국인 이름을 딴 캘리포니아주립대 ‘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 세미나에 참석할 예정이다. 한미동맹의 상징인 김 대령을 기념하는 우표도 오는 12월 29일 서거 10주기 이전인 10월쯤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내기 위해 발로 뛰고 있다. 김 대령의 일대기는 미국에서 영화로도 만들어질 계획이다.

무엇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집권 이후 한반도 안보 상황이 엄중한 가운데 박 대통령의 이번 방미 기간 중에 어떤 식으로든 김 대령의 삶과 윌라 김 여사를 통해 굳건한 한미동맹을 다시 한번 공고히 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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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영웅 김영옥’ 자서전 저자인 한우성 재미언론인(서 있는 이)이 지난 2일 서울 용산 미군기지에서 주한미군 주요 지휘관들을 대상으로 김 대령의 한미 군사동맹 기여와 군인으로서의 리더십을 강연하고 있다. / 사진=김영옥평화센터 제공
세계적 의상디자이너인 윌라 김 여사는 브로드웨이 무대의상계의 대모로 토니상과 에미상을 두 차례나 받았다. 2007년에는 한국계 처음으로 미국 무대예술계의 최고 영예인 ‘무대예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독립운동가 김순권 씨의 4남2녀 중 큰 딸인 윌라 김은 두 살 아래 동생인 김 대령과 각별한 사이였다. 어린 시절 김 대령에게 미국의 문화를 가르친 스승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의 저자인 한우성 재미언론인도 지난 2일 한미연합사령부가 있는 서울 용산 미군기지 미8군사령부에서 주한미군 주요 지휘관들을 대상으로 김 대령의 군인정신과 한미 군사동맹의 중요성을 강연했다. 한 씨는 6일 오후 전쟁기념관 사진전에서 저자 사인회도 진행한다.

지난해 12월 사단법인 창립총회를 거쳐 지난 1월 국가보훈처로부터 설립 승인을 받은 김영옥평화센터는 올해 서거 10주기를 맞아 이번 사진전과 함께 군인 독후감 공모전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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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전쟁영웅인 김영옥 미국 예비역 육군 대령이 어린 시절에 현재는 유일한 생존 혈육인 세계적인 의상디자이너 누나 윌라 김 여사와 함께 링컨 파크에서 놀고 있다. 윌라 김 여사가 생존해 있을 때 김 대령과 김 여사 삶을 통해 한미 혈맹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 사진=김영옥평화센터 제공
이 이사장은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 100주년이자 김 대령의 출생 100주년인 2019년 1월 26일 서울 은평구에 김영옥 평화센터기념관도 세울 예정”이라면서 “한국과 미국에서 김 대령의 인도주의적 참군인 정신을 기리고 배워야 한다는 인사들의 적극적인 동참과 기부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인으로서 전쟁영웅이며 미국 사회에서 여성과 아동, 청소년, 노인, 장애인, 빈민, 소수계 등 사회적 약자 편에서 권익을 신장시키는 사회봉사활동가로서 김 대령의 리더십과 희생정신은 현재 한국 육군 리더십센터와 일선 육·해·공군·해병대 장병들은 물론 공무원, 초중고생, 대학생, 경찰 교육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김 대령은 전쟁 중에도 “나는 인간이란 존재의 속성상, 그래도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사상자를 줄이기 위해 되도록 단기간 안에 끝내야 한다고 믿는다. 전쟁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 전쟁을 모른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하나뿐인 소원이다”고 말할 정도로 인도주의와 평화주의에 바탕한 군인정신을 갖고 있었다.

한국인으로서 ‘불멸의 전쟁 영웅’ ‘아름다운 전쟁 영웅’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다. 김 대령은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눈부신 전공으로 20여개의 훈장과 표창장을 받았다. 하지만 사회적 소수 약자에 대한 삶으로 우리시대의 진정한 영웅으로 한국과 미국에서 다시 조명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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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2009년 한국인의 이름을 따 로스앤젤레스(LA)에서 개교한 ‘김영옥 중학교(Young Oak Kim Academy)’는 해마다 40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 한국 학생이 약 12%이며 나머지 88%가 외국인으로 졸업생들은 기본적으로 친한파가 되고 있다. 2011년에는 한국 초등학교 5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에 한인 전쟁 영웅이며 위대한 인도주의자로 김영옥 대령의 삶을 수록해 학생과 교사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 사진=김영옥평화센터 제공
김 대령은 1910년대 미국 이민 1세대 가족인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 김순권 씨와 유학생이었던 어머니 노라 고 사이에서 6남매 중 장남으로 1919년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미 육군 병사로 징집돼 장교후보생에 뽑혀 이탈리아·프랑스 전선에 소위로 참전했다. 전설적 전쟁 영웅으로 로마·피사 해방의 주역이 됐다. 재미 일본인 2세들로 이뤄진 442연대 100대대 지휘관으로서 일본인들을 이끌고 ‘총알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휘관’이란 한국인의 기개를 보여줘 일본인들로부터도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미국 언론이 그를 전쟁 영웅으로 대서 특필했지만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미군 내 인종차별로 전후 전역해 성공적인 사업가로 변신했다. 하지만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서류상의 조국이 아닌 진짜 내 나라, 아버지의 나라를 위해 다시 군복을 입고 자원 입대 참전했다.

유엔군의 3차 반격 때 중상까지 입으면서 38선 중부전선을 60km나 북상시킨 전쟁 영웅으로 전쟁 중에 미국 역사상 유색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대대장 지휘관으로 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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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전쟁영웅 고 김영옥 미 육군 대령은 아버지의 나라를 위해 한국전쟁에 18개월 동안 참전해 38선이 북쪽으로 60km 북상시키는데 주역으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김 대령은 미 7사단 31연대 1대대 소속으로 51년 겨울부터 서울 삼각지에 있는 고아원 경천애인사를 지정해 재정 지원을 시작했다. 한국을 떠난 이후에도 김 대령은 수년간 계속 지원했으며 경천애인사에는 많게는 500여명의 고아들이 있었으며 훗날 목사, 예술가, 사업가, 교수 등으로 자랐다. / 사진=김영옥평화센터 제공
한국전쟁 중 서울 삼각지에 있는 경천애인사 고아원을 통해 500여명의 전쟁 고아를 지원한 ‘전쟁 고아의 아버지’로서 전후에도 미국으로 입양된 고아들을 돌봤다. 한국군 군사고문으로 전시동원계획 개편과 한국군 최초 미사일 부대 창설에도 기여했다.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로 별을 달지 못하고 대령으로 군복을 벗은 그는 예편 이후에도 전쟁 영웅을 뛰어넘어 미국 역사를 바꾼 소수계의 권익을 신장시킨 사회봉사활동가로 헌신했다. 한인 전쟁영웅이며 미국 사회에서 여성과 아동, 청소년, 노인, 장애인, 빈민, 소수계 등 사회적 약자 편에서 권익을 획기적으로 신장시켰다.

소수계 청소년을 돕는 비영리단체와 한인청소년회관 출범을 주도했으며 빈민구제기관을 창립 이사장을 지냈다. 가정폭력 피해 여성과 그 자녀들을 위한 보호소 설립, 일미박물관과 한미연합회, 미 최대 소수계 비영리 보건기관인 한인건강정보센터까지 창립했다.

미 국방부의 노근리사건진상조사위원과 함께 일본계 미군 장병 2차대전 참전용사회 회장을 맡아 한·일, 한·미 관계 증진에도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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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포털사이트인 미국의 엠에스엔 닷컴(msn.com)은 2011년 미국 현충일을 맞아 미국 역사상 최고의 전쟁영웅 16명을 선정하면서 유색인으로서는 유일하게 한인 김영옥 대령을 포함시켰다. 김 대령에 대한 존경은 곧 한국인에 대한 존경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 대령의 부인 아이다는 한인으로서 남캘리포니아 최초로 4년제 간호대학을 졸업한 간호사로 남편이 이탈리아에서 부상을 당했다는 전보를 받고 간호장교가 돼 유럽 전선으로 날아갔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장교로 나치와 싸운 유일한 한국인 부부가 됐다. / 사진=김영옥평화센터 제공
2010년에는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주립대에 한국 정부와 재미 한인사회가 협력해 재미한인연구소를 설립하면서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대학기구에 한국인 이름을 딴 ‘김영옥재미동포연구소’라고 명명했다. 한국으로서는 1948년 정부수립 이래 국제무대에 세운 최초의 해외동포연구소이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함께 참전했던 노병들은 “김영옥은 항상 가장 선봉에서 총알이 날아오는데도 피하지 않고 부하들에게 결코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 지휘관이었다”면서 “장교로서, 지휘관으로서, 리더로서, 군인으로서 늘 부하들과 생사를 최일선에서 함께 했으며 전쟁 영웅으로 이름을 남기기 보다는 모든 것을 걸고 전쟁을 없애고 싶어했다”고 기억했다.

그가 받은 주요 훈장만 해도 한국 정부로부터 최고훈장인 태극무공훈장과 국민훈장 모란장, 한국방송(KBS) 해외동포상, 미국 정부로부터 특별무공훈장, 은성무공훈장 2개, 리전 오브 메릿 2개, 동성무공훈장 2개, 퍼플 하트 3개를 받았다. 프랑스 최고훈장인 레지옹 도뇌르와 이탈리아 십자무공훈장·동성무공훈장 등 모두 20여개의 훈장·표창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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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중위가 1944년 2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에서 마크 클라크 미군 5군사령관으로부터 은성무공훈장을 받고 있다. 독일군 전차부대와 맞서 싸운 김 중위의 활약상은 미국 언론에까지 대서 특필됐다. 왼쪽 아래 작은 사진은 김 중위에게 훈장을 달아줬던 클라크 대장(왼쪽에서 두번째 앉은 이)이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사령관으로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에 서명하고 있다. / 사진=김영옥평화센터 제공
김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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