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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피해자, ‘일본제철’ 상대 손배소 또다시 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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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슬 기자

승인 : 2021. 09. 08. 11:43

法 "'소멸시효' 완성"…명확한 '기준' 없어 시효 기점 두고 엇갈린 판단 잇달아
'2012년 파기환송 판결 vs 2018년 대법원 판결'…피해자 혼란만 가중
강제노역 피해자 유족, 일본기업 상대 손배소 패소
강제동원 피해자 정모씨의 자녀들이 일본제철(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선고가 있던 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왼쪽)과 전범진 변호사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유가족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으나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또다시 패소했다. 청구권의 소멸시효를 두고 명확한 기준이 없는 터라 각급 법원에서 엇갈린 판단을 내놓고 있어 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5단독 박성인 판사는 8일 강제징용 피해자 정모씨 등 유가족들이 일본제철(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이미 고인이 된 정씨 등은 1940~1942년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돼 ‘가마이시제철소’와 ‘오사카제철소’ 등에서 일본이 패전할 때까지 위험한 노동에 종사했다고 주장했고, 유족은 이를 바탕으로 지난 2019년 4월 2억여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번 소송에서의 쟁점도 ‘소멸시효’였다. 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2018년 대법원 판결이 아닌 2012년 파기환송 판결을 기준으로 삼아 이들의 청구권은 이미 소멸했다고 판단했다.
앞서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인 이춘식씨 등은 2005년 일본제철을 상대로 국내 법원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2심 패소 후 상고심인 대법원에서 2012년 파기환송돼 2018년 재상고심에서 최종 승소했다.

민사 소송은 가해자가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 혹은 피해자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안 날로부터 3년 안에 제기해야 한다. 이 기간이 지나면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한다. 이번 사건 소 제기는 2019년에 이뤄졌으므로 소송 제기 시점에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반면 원고 측은 대법원 최종 판결 시점이 소멸시효의 기준이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족들의 소송을 대리한 전범진 변호사는 “앞선 판결에서 동일한 판사가 파기환송 판결을 기점으로 소멸시효가 완성된다고 했지만, 파기환송 판결 자체가 최종적으로 확정된 것도 아니고 잠정적인 것”이라며 “소멸시효를 2012년으로 한다면 항소심에서 충분히 다툴 여지가 있다”고 항소 의사를 내비쳤다.

다만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2018년 판결에서 소멸시효와 관련해 구체적인 판시를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강제징용 사건에서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시효의 기준은 오롯이 재판을 심리하는 판사에게 달려있는 상황이다.

박 판사는 지난달 11일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도 2012년 파기환송 판결을 소멸시효의 기준으로 삼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그러나 광주고법 민사2부(당시 최인규 부장판사)는 유사한 사건에서 대법원 판결이 확정된 2018년 10월을 기준으로 시효를 계산해야 한다며 강제동원 피해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광주고법 재판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경우 한일청구권 협상을 비롯해 그동안 개인이 배상을 청구하기 어려운 사실상 장애 사유가 있었다”며 “법령의 해석·적용에 관한 최종적인 권한을 가진 최고 법원인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청구권 협정에 관한 해석 등을 명확히 한 시점에서야 비로소 장애 사유가 해소됐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김예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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