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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용 칼럼] 추경 중독증에 빠진 대한민국

[김영용 칼럼] 추경 중독증에 빠진 대한민국

기사승인 2023. 06. 1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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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용 전남대 명예교수·경제학
지난 1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5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것을 정부·여당에 제안했다. 그는 고금리 피해 회복 지원, 고물가·에너지 부담 경감, 주거 안정, 미래 성장 및 경기 대응 등을 제안 이유로 들면서, 경기 침체기에는 정부가 재정 지출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재정의 확대 투입이 과연 문제의 해결책일까?

국가재정법 제89조는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가 발생하거나 경기침체와 대량실업, 남북관계 변화와 같은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정부가 추경을 편성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이 법령에 의거 2015년~2019년에 각각 1차에 걸쳐 5조~11조 원, 2020년에 4차에 걸쳐 66.8조원, 2021년에 2차에 걸쳐 49.8조원, 2022년에 2차에 걸쳐 78.9조원의 추경을 편성한 바 있다. 중앙 및 지방 정부의 국가부채 또한 매년 증가하는 본예산과 잦은 추경으로 빠르게 늘어나 2022년 말 기준 1068조8000억원으로 GDP 대비 49.7%를 기록했다. 이를 보면 대한민국은 지금 심한 재정 중독증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이제 질문은 추경 등으로 재정을 확대 투입하면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날 것인가이다. 그런데 작금의 경기 침체는 미국에서 2001년 말부터 증가한 은행 신용 때문에 발생한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전 세계적으로 증가한 신용 탓에 경제의 공급구조가 소비자들이 원하는 소비구조를 이탈한 상황에서, 각국 정부가 불황 극복이라는 이름 아래 신용을 계속 늘렸기 때문에 발생한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다. 이는 경제가 정상궤도에 다시 진입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신용 증가를 멈추고, 경제가 시장의 조정 과정에 의해 불황을 탈출하는 과정에 일절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추경 등으로 재정을 확대 투입하면 경제 상황은 더욱 나빠진다.

추경 예산을 정부 저축에서 충당하지 않는 한, 국채 발행으로 빚을 내야 한다. 국채를 민간이 인수한다면 총생산 중 민간의 몫이 줄어들고 정부가 쓰는 비중이 늘어난다. 민간과 해외 주체가 아닌 중앙은행이 국채의 일부 또는 전부를 인수한다면, 이는 통화 공급 증가를 통해 수요만 늘릴 뿐이다. 어떤 경우에도 생산은 늘어나지 않는다. 즉 성장률 하락을 막고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경제활동의 지표로 흔히 사용되는 국내총생산(GDP)은 한 경제가 일정 기간에 생산한 최종 재화와 서비스의 총 시장가치를 말한다. 그리고 이는 소비(C), 투자(I), 정부지출(G), 수출(X)로 처분된다. 그런데 이 4가지 구성 요소를 모두 더한 식(GDP = C+I+G+(X-M))은 항상 성립하는 항등식으로서 총생산과 같다. 수입(M)을 빼는 이유는 소비, 투자, 정부지출에 포함된 수입을 제거해야 GDP 개념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요점은 정부지출을 늘리면 다른 3 구성 요소가 그만큼 줄어들고 GDP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즉 성장률은 총생산에 달려 있을 뿐, 수요의 구성 요소를 조정하여 높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논리가 경제학계를 지배하고 있는 이유는 다수의 경제학자들이 이런 패러다임에 동의하기 때문인데, 이는 대공황 이후 이른바 케인즈 혁명이라고 불리는 반(反)혁명의 결과이며, 그간 학파 간 헤게모니 다툼에서 케인지안들이 주류를 차지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이제 이런 경제학이 서서히 물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논리가 정치 영역으로 건너가면 정치인들의 강력한 지지를 얻어 위세를 떨친다. 자신들의 권한을 넓히고자 하는 정치인들의 유인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미국도 정부 부채 한도를 놓고 공화당과 민주당이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지만, 양당 모두 진정으로 부채 한도를 낮추려고 하지는 않는다. 

부채 한도는 항상 높아지고 막대한 양의 부채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부채 한도는 10년 전의 16조7000억 달러에서 2023년에는 32조 달러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부채 증가율을 낮추는 것을 마치 부채 한도를 낮추는 것으로 호도하기도 한다. 연방지출이 증가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편 정부 예산이나 국가채무 크기의 국가 간 비교에서 OECD 국가들이 적절한 기준이 될 수도 없다. 즉 이런 사안에 관한 글로벌 스탠더드는 없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인들은 이들 국가들의 관행에 의존하는 행태에서 벗어나 인간 세상의 운행 이치에 대한 지적 성찰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가치 판단에 따른 기준을 마련하고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이재명 대표가 언급한 것처럼 재정 지출을 늘리면 이는 대부분 특정 계층과 직군을 돕는 데 쓰인다. 물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지 지출은 바람직하지만, 대부분은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뿌려진다. 그 결과 사람들을 비루하게 만들고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인 도덕을 황폐화시킨다. 재정 지출을 늘리는 데 따른 비용은 증세나 인플레이션을 통해 슬그머니 일반 납세자에게 전가된다.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국가'는 '국민의 삶을 망가뜨리는 국가'로 귀결된다. 

결국 개인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시행되는 정부 정책의 폐해로부터 벗어나 시민국가를 세우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개인과 국가와 정부 간의 관계에 대해 부단히 학습하여 사리분별 능력을 기르는 수밖에 없다. 깨어있는 시민이자 유능한 유권자가 되는 길밖에 없다. 그것만이 자신들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지적 무장이자, 국가는 개인의 생명과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는 길이기도 하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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