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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빈자들의 처지 개선, 오직 시장경제에서만 가능 <1>

[칼럼] 빈자들의 처지 개선, 오직 시장경제에서만 가능 <1>

기사승인 2023. 06. 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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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의 공감 원리
독일 <디 벨트> 前편집장 라이너 지텔만
국내에서도 '부유한 자본주의, 가난한 사회주의', '반자본주의자들의 열 가지 거짓말'의 번역서가 출판된 독일의 저명한 저술가인 라이너 지텔만 박사(Dr. Rainer Zitelmann)가 아시아투데이에 '애덤 스미스 탄신 300주년'을 기념하는 귀한 논문을 보내왔다. 이를 황수연 전 경성대 교수가 번역한 것을 축약해 6월 16일 자에 게재했다. 그 내용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바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커서 전문을 6회에 걸쳐 나눠 싣는다.
<편집자 주>



우리는 인간 애덤 스미스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 유명한 스코틀랜드인의 생일에 관해서도 알지 못한다. 우리가 아는 전부는 그가 세례받은 날이 1723년 6월 5일(율리우스력)이라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의 그레고리력에 따르면 그가 6월 16일에 세례를 받았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는 세관 공무원이었던 자기 아버지를 전혀 알지 못했는데, 그의 아버지는 애덤 스미스가 태어나기 단지 몇 달 전 44의 나이에 사망했다.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그의 어머니였는데, 어머니는 그를 길렀을 뿐만 아니라 1784년 그녀의 사망 때까지 그와 함께 살기도 했다. 스미스는 전혀 결혼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가 두 번 사랑에 빠진 것을 알고 있을 뿐이고 그의 애정은 보답받지 못했는데 이것은 그가 다소 매력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는 사실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17살에 그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6년간의 공부를 시작했지만, 그 대학교에 감명받지는 않았다. 그는 후에 자기 교수들을 깎아내리는 말을 했는데, 그는 그들을 게으르다고 여겼다. 서른 살이 되기 전에 그는 글래스고 대학교에 도덕 철학 교수로 임명되었고 자기의 첫 번째 주요 저작 '도덕 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을 출판했다. 그는 자기의 전 생애에 단지 두 권의 주요 저작만 출판했는데 1776년에 출판된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이 훨씬 더 잘 알려져 있다. 그가 더 많은 책을 썼지만, 그는 원고들을 자기의 사망 전에 불태우게 했고 그래서 우리는 단지 이 두 책과 많은 그의 에세이 그리고 그의 강의 필기록만 가지고 있다. 

스미스의 책들을 전혀 읽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는 때때로 극단적인 이기심의 옹호자로, 어쩌면 고든 게코(Gordon Gekko)식 극단적 자본가의 정신적 아버지로 여겨지는데, 후자는 영화 '월가(Wall Street)'에서 "탐욕은 좋은 것이다!"라고 외친다. 그러나 이것은 스미스가 자기의 책 '국부론'에서 경제 주체들의 자기 이익을 강하게 강조했다는 사실에서 유래하는 왜곡된 이미지이다. 그렇지만 이 그림은 아주 확실히 잘못된 표현이다.

◇근본 개념으로서 공감

자기의 책 '도덕 감정론'의 첫 장(章)은 '동정에 관해(Of Sympathy)'라는 절로 시작되는데, 거기서 그는 동정을 '하여간 어떤 열정이라도 가진 동료 의식'으로서 정의했다. 오늘날 우리는 아마도 '공감(empathy)'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이기적이라고 가정될지라도 명백히 그의 본성에는 몇몇 원칙이 있고, 이것들은 그에게 다른 사람들의 운명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고 그들의 행복을 그에게 필요하게 하는데 비록 그가 그것으로부터 그것을 보는 기쁨 외에는 아무것도 끌어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렇다. 이 종류 중에는 연민이나 측은히 여기는 마음, 다른 사람들의 비참함에 대해 우리가 그것을 보거나 매우 생생한 방식으로 그것을 느끼게 될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있다."

스미스의 동정은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다. 스미스는 다양한 원천으로부터 1년에 900파운드에 달하는 소득을 얻었는데, 이것은 대학교 교수 봉급의 서너 배였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의 마지막 유언장을 읽었을 때 그것은 그의 조카 데이비드 더글러스(David Douglas)가 분명히 실망감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그가 기대했었던 것보다 훨씬 더 적게 받아서 그 유언은 스미스의 친구들이 오랫동안 그런 것이 아닌지 의심했던 것 즉 스미스가 자기의 거의 전체 부(富)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개 비밀리에 기부했었다는 점을 확증하였다. 자기의 후함으로 사실상 스미스는 그 결과 그 자신 한 시점에 금전 문제에 부딪히기조차 했었다. 만약 당신이 그의 두 주요 저작 '국부론'과 '도덕 감정론'을 읽는다면 당신은 그가 부자들과 권력자들에 관해 긍정적으로 말하는 단 한 구절이라도 발견하는 데 애를 먹을 것이다. 상인들과 지주들은 거의 전적으로 부정적 시각으로, 주로 자기들의 이기적인 이익을 주장하기를 원하고 독점을 창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로서 그려진다.

"우리의 상인들과 우두머리 제조업자들은 높은 임금이 가격을 올리는 나쁜 효과를 불평하고 그리하여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자기들의 재화의 판매를 줄인다. 그들은 높은 이윤의 나쁜 효과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들 자기 이득의 유해한 효과에 관해서는 침묵한다. 그들은 단지 그 다른 사람들만 불평한다" 혹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심지어 흥겹게 떠들고 기분 전환을 하기 위해서도 별로 같이 만나지 않지만 그 대화는 대중에 대한 음모나 가격을 올리려는 어떤 간계로 끝난다."

자본가들에 관한 긍정적인 문장이 애덤 스미스 저작의 어떤 곳에서보다도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Communist Manifesto)'에 더 많이 있다. 부르주아 계급은 모든 과거 세대를 합친 것보다 더 강력한 생산력을 창출한다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감탄하여 쓴다.

스미스의 저작에는 그러한 감탄의 흔적이 없다. 대신 부자들은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다. 스미스의 옹호자들은 이것이 기업가들이나 부자들에 대한 어떤 종류의 일반적인 적의도 나타내지 않고 오히려 스미스의 자유 경쟁 옹호와 독점 반대를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확실히 한 측면이지만 그런데도 그의 두 저작을 읽으면 누구든지 궁극적으로 스미스가 정치인들을 싫어하는 만큼 그가 부자들을 많이 싫어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애덤 스미스조차도 지식인들이 부자들에 대해 전통적으로 품었던 적의가 없지 않았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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