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칼럼] 빈자들의 처지 개선, 오직 시장경제에서만 가능 <2>

[칼럼] 빈자들의 처지 개선, 오직 시장경제에서만 가능 <2>

기사승인 2023. 06. 29. 17:00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가난한 사람들의 운명에 대한 동정
독일 <디 벨트> 前편집장 라이너 지텔만
독일 <디 벨트> 前편집장 라이너 지텔만

(부자들에 대한 적의가 없지 않았던 것과는 반대로 스미스의 저작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상태에 동정을 나타내는 많은 구절이 있다. 그는 그런 동정을 그 단어의 가장 엄밀한 의미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국한하지 않고, 또한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도 포함했다. "즉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을 임금과 교환해야 하는 대부분 인구의 상태"에 동정을 나타내었다. ≪애덤 스미스의 미국≫에서 글로리 M. 류(Glory M. Liu)는 애덤 스미스의 평판과 연구 상태를 개관한다. "스미스에게는, 상업 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색은 그것이 가난한 사람들의 상태를 개선한다는 점이었다는 거의 만장일치 합의가 있다."

≪국부론≫에 유명한 구절이 있다. "구성원들의 태반이 넘는 사람들이 가난하고 비참한 사회가 설마 번영하고 행복할 리 없다. 국민 전체를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는 그들이 자신들이 꽤 잘 먹고 입고 자도록 자기들 자기 노동의 산물의 몫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그 밖에도, 그저 형평(의 문제)일 뿐이다."

오늘날 이 말들은 스미스가 정부 주도의 부(富)의 재분배를 옹호했다고 주장하도록 때때로 잘못 해석된다. 그것은 그의 의도가 아니었고 그는 확실히 사회적 혁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빈곤은, 스미스에 따르면, 미리 운명이 정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정부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국부론≫의 제8장에, 위에서 인용된 문장들과 더불어 스미스는 생활 수준을 올리는 유일한 길이 경제성장을 통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은 임금을 올리는 유일한 길이다. 침체 경제는 임금 하락에 이른다. 다른 곳에서 그는 "기아는, 부적합한 수단으로 부족의 불편을 제거하려고 시도하는 정부의 폭력 외의 어떤 다른 원인으로부터도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쓴다. 그가 얼마나 옳았는지는 250년 후에, 가격 통제를 가지고 인플레이션을 통제하려는, 비록 수천 번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수백 번 실패한 시도 후에 우리가 충분히 잘 아는 어떤 것이다.

"자유주의적 노동 보상"은 "부 증가의 효과"라고 스미스는 썼고 "사회가 추가 획득으로 나아가고 있는 동안에… 노동에 종사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대부분 국민의, 상태는 가장 행복하고 가장 편안한 것 같다. 그것은 정상(定常) 상태에서는 어렵고, 퇴보 상태에서는 비참하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반면에 카를 마르크스는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의 붕괴에 다다를 다양한 경제 "법칙"을 자기가 발견했다고 믿었는데, "이윤율이 하락하는 경향"이나 프롤레타리아의 궁핍화 같은 것들이다. 자기의 주요 저작 ≪자본론≫에서 마르크스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공식화했다.

"이 변환 과정의 모든 이점을 빼앗고 독점화하는, 자본 거물들의 끊임없이 줄어드는 수와 더불어, 비참함, 억압, 노예제, 강등, 착취의 크기가 증가한다. 그러나 이것과 함께 또한 항상 수가 증가하고, 자본주의 생산 과정 그 자체의 바로 그 메커니즘에 의해 훈련되고, 단결되며, 조직되는 계급인 노동 계급의 반항도 증가한다. 자본의 독점은, 그것과 더불어 그리고 그것 아래에서 생겼고 번성한, 생산 양식에 대한 구속이 된다. 생산 수단의 중앙 집권화와 노동의 사회화는 마침내 그것들이 자기의 자본주의 외피와 양립 불가능하게 되는 지점에 도달한다. 이 외피는 산산이 파열된다. 자본주의 사유 재산의 조종(弔鐘)이 울린다. … 그러나 자본주의 생산은, 거침없는 자연의 법칙과 함께, 자기 자신의 부정을 낳는다."

≪국부론≫이 1776년에 출판되었을 때, 자본주의는 아직 유아기에 있었고 압도적인 다수가 극빈 상태에서 살았다. 그리고 빈곤은 당시에는 그것이 오늘날 의미하는 것과 매우 다른 어떤 것을 의미했다. 사람들은 야위었고 뼈대가 가늘었다―역사를 통틀어 인체는 불충분한 열량 섭취에 적응하였다. "18세기의 몸집이 작은 근로자들은," 앵거스 디턴(Angus Deaton)이 자기의 책 ≪대탈출(The Great Escape)≫에서 쓰듯이 "실제로 영양 덫에 갇혔다. 그들이 육체적으로 아주 약했기 때문에 그들은 많이 벌 수 없었고, 일이 없어서 그들이 식량을 살 돈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충분히 먹을 수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삶이 아주 더 느렸던 조화로운 전(前) 자본주의 상황에 관해 열심히 이야기하지만, 이 나태는 주로 영구적인 영양실조에 기인하는 육체적 허약의 결과였다. 200년 전에는 영국과 프랑스 주민들의 약 20%가 전혀 일할 수 없었다고 추정된다. "기껏해야 그들은 하루에 몇 시간의 느린 보행을 위해 충분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을 뿐인데, 이것은 그들 대부분을 구걸 생활로 운명 지었다."

1754년에 한 영국 작가는 보고했다. "잘 살기는커녕, 프랑스에서 농부들은 필요한 생존 수단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자기들이 마흔이 되기 전에 쇠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의 유형이다 … 프랑스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외모만으로도 그들의 신체의 악화가 증명된다." 상황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도 비슷했다. 저명한 프랑스 역사가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그렇다면 이것들은 우리가 논하고 있는 생물학적 구체제를 구성하는 데 소용되는 사실들이다. 출생 수와 대충 같은 사망 수, 매우 높은 유아 사망률, 기아, 고질적인 영양 부족, 그리고 가공할 유행병." 어떤 십 년들에는, 갓난아이들이 태어난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기조차 했다. 당시의 그림들에서 보듯이, 사람들의 '소유물(possessions)'은 몇 가지 초보적인 품목에 국한되었는데, 걸상 몇 개, 벤치 하나 그리고 식탁 역할을 하는 통 하나였다.

자본주의가 발생하기 전에 세계 대부분 사람은 극빈 상태에서 살고 있었다. 1820년에는 전 세계 인구의 약 90%가 절대적 빈곤 상태였다. 오늘날 그 수치는 9% 미만이다. 그리고 아주 현저하게 최근 몇십 년간, 중국과 그 밖의 나라들에서 공산주의의 종말 이래로, 빈곤 하락은 어떠한 이전 인간 역사 기간에서도 필적할 수 없는 속도로 빨라졌다. 1981년에 절대 빈곤율은 42.7%였다. 2000년까지 그것은 27.8%로 하락했었고, 오늘날 그것은 9% 미만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