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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칼럼] 노키즈존, 노실버존, 그리고 관용

[이경욱 칼럼] 노키즈존, 노실버존, 그리고 관용

기사승인 2023. 07. 1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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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우리나라를 찾은 미국의 한 지인이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식당에서 어린이들이 뛰어다니는 등 소란을 피우면 곧바로 경찰에 연락한다." "경찰을 부른다고?" 깜짝 놀랐다. 이전에는 이런 '일탈'에 대해 눈살을 찌푸리는 데 그쳤지만 이제는 공권력을 앞세울 정도로 모두가 더 강력히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린이들을 직접 제지하는 것은 자칫 어른끼리의 다툼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 이를 피하면서 자신의 쉼과 편안함을 최대한 방어하겠다는 생각이 깔려 있을 테다. 


그 이후 싱가포르의 한 공항에서 겪었던 일이다. 거의 자정 무렵 환승을 위해 터미널 대합실 의자에 앉아 졸음을 견디고 있었을 때였다. 갑자기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4명의 어린이가 대기실을 마구 뛰어다니면서 소리를 질러댔다. 그런데 누구 하나 나서 이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부모로 보이는 남녀는 의자에 앉아 열심히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린이들의 이런 일탈은 제법 오래 이어졌다. 견디다 못한 한 승객이 소리를 질렀고 부모들은 겨우 어린이들을 제지하는 듯했다. 그것도 잠시, 어린이들은 다시 대합실 곳곳을 뛰어다니면서 소란을 피웠다. 이들의 소란은 탑승 안내가 나오면서 끝났다. 부모와 어린이들은 남들보다 먼저 비즈니스석으로 탑승하러 일어섰다. "여기가 미국이라면 경찰이 출동했을까. 어린이들의 일탈을 지켜보는 부모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요즘 '노키즈존(No Kids Zone)' 표시 부착 식당이 늘고 있다. 편안하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맛난 음식을 먹거나 여유를 즐기고자 할 때 어린이들의 일탈을 경험하게 되면 솔직히 마음이 편치 않다. 오래전에는 어린이들에게 직접 주의를 줬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둔 지 오래다. 타이르고 싶어도 들으려 하지 않는 어린이와 "왜 내 자식에게 잔소리하느냐"며 덤벼들 부모 생각에 지레 포기하기 마련 아닌가. 

여기에 더해 '노실버존(No Silver Zone)'도 등장하고 있다. 어르신의 일탈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런 표시를 한 식당이나 공공장소를 아직 가 본 적이 없어 피부로 느끼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런 뉴스를 접한 모든 어르신은 심리적으로 상당한 부담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런 가운데 서울 강남 코엑스의 한 패스트푸드점은 출입문에 '예스키즈존(Yes Kids Zone), 온 세상 어린이 대환영!'이라는 표시(사진)를 부착해 뒀다. '노(No)'라는 표시가 여기저기 등장해 마음이 불편한 상황에서 '예스(Yes)'라는 단어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런 일련의 현상을 접하고 겪으면서 우리 사회의 '관용(寬容·tolerance)'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자신의 이익을 절대로 침해받지 않으려는 인간의 본성은 탓할 게 전혀 아니다. 손에 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세상에 대해 자신감이 넘치면 넘칠수록 자신의 영역을 더 굳건히 지키고자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런 탓에 대중이 감히 넘보기 힘든 값비싼 식당이나 고급 리조트 등을 찾는 수요는 여전하다. 

그럼에도 이 세상 85억명은 빈부격차, 지위고하와 관계없이 서로 관계를 맺어가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핵가족화와 세대 간 단절 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 서로를 살펴 가면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대부분은 일탈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사회와 어울려 지내고 있다. 그러나 노키즈존, 노시니어존 등 구획 짓고 차별화하는 행위나 일부의 일탈을 지나치게 일반화하는 것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지역사회에서 모든 연령과 계층이 함께하는 세대 통합적 공동체를 꿈꾸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모두가 관용의 마음을 품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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