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이각범 칼럼] 진영논리 속 반지성주의가 겁박하는 과학적 담론

[이각범 칼럼] 진영논리 속 반지성주의가 겁박하는 과학적 담론

기사승인 2023. 07. 16. 17:00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이각범 한국과학기술원 명예교수
지금 우리 사회는 반지성주의의 거대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 문화혁명 당시 중국에 닥쳤던 반(反)엘리트주의 광풍과 흡사하다. 중국을 현대화하여 세계 선진국 대열에 합류시키려는 세력(專)과 이를 저지하려는 극좌이념세력(紅) 사이의 싸움은 신중국 발전의 분수령을 가늠하는 일대 격전이었다. 1973년 8월 중국공산당 제10차 전국대표대회(10全)에서 저우언라이 총리는 직접 정치보고를 하였다. 핵심은 서기 2000년까지 중국을 현대화하여 농업, 공업, 과학기술, 군사의 4개 부문에서 세계 선진 수준에 도달하겠다는 비전이었다.

이에 대하여, 극좌문혁세력은 당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저우언라이 총리에 대한 명시적 반대 대신 비림비공(批林批孔·린뱌오를 비판하고, 공자를 비판한다)의 이름 아래 집중적 공격을 시작하였다. 1966년 문화혁명이 시작된 이래 누군가를 중국판 '적폐세력'으로 지목하여 고깔모자를 씌우고, 거리로 끌고 다니다가 대중의 린치 끝에 처형하거나, 투옥하는 일에 익숙한 세력이었다. 마오 주석의 인민공사 실험으로 피폐해진 경제를 일으켜 세우던 류샤오치가 제일 먼저 그렇게 당했고, 그의 부인도 장신구를 단 화려한 옷을 입힌 채 인민복을 입은 홍위병이 운집한 광장 한복판 단상에 세워졌다. 유능한 관료나 당료를 포함해 존경받던 교수와 교사, 과학자 등 지식인이 그렇게 당했다. 역사 속 인물 공자도, 삼국지의 관우도, 수호지의 송강도 광장의 인민법정에 소환되었다. 높은 인격, 해박한 지식, 유능한 행정능력, 인재발탁 능력을 가진 사회의 리더들이 실험실에 틀어박혀서 사상교양을 소홀히 한 죄로, 그간 중국인민의 추앙을 받은 죄로 숙청의 대상이 되었다. 4인방에게는 거칠 것이 없었다. 공연예술을 통한 대중 세뇌 능력, 언론권력, 노동계와 사회단체 동원능력, 정치평론가집단 조직능력 등을 두루 갖춘 그들도 제압하지 못한 마지막 대상은 저우언라이 총리와 정치국상무위원 덩샤오핑뿐이었다. 청나라 상류층 집안 출신인 저우총리는 거유(巨儒)로 비유되고, 덩샤오핑은 주자파(走資派)로 매도되었다. 4인방 중 한 사람인 장춘챠오는 〈부르조아지에 대한 전면적 독재〉라는 논문을 통해 "생산력의 증강을 통해 사회주의 중국을 현대화하여야 한다는 논리는 '생산력주의 (唯生産力論)'"라고 비판하였다. 생산관계와 생산력의 변증법적 발전을 통해 공산주의 이상을 실현하려면 생산관계의 철저한 혁명(계급투쟁)이 먼저라는 논리였다. 이로써 경제관료, 과학기술인, 기업인들이 비판대로 불려갔다. 

1976년 4인방이 몰락함으로써 10년간의 문화혁명은 사실상 종식되었다. "중단 없는 계급투쟁"이 의도한 바는 반지식, 반과학, 반전문가, 반권위, 반위계질서 운동이었다. 문화혁명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반지성주의 난동이었다. 10년 동안 지속된 홍(紅)·전(專) 대립이 끝남으로써 전문가 그룹은 핍박의 대상에서 새로운 시대의 주역으로 등장하였다.

공식적으로 문화혁명을 종식시킨 직후인 1978년 3월 18일 새로운 실권자 덩샤오핑 국무원부총리는 〈과학에 관한 전국회의〉 개막식 연설을 하였다. 이 연설은 향후 중국의 발전방향을 제시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는 〈4개 현대화〉의 핵심은 과학기술의 현대화임을 천명하였다. "과학기술은 생산력의 핵심부문으로 과학기술의 급진이 없으면 고속경제발전도 없다"고 하면서 4인방은 옳고 그름을 흐리는 선동을 일삼아 인민의 의식을 흐렸다고 하였다. 

이 회의에서 그가 특히 강조한 내용은 신과학기술(고분자화학합섬, 원자력, 컴퓨터, 반도체, 우주산업, 레이저산업)에 대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투자를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 정치적 성향을 떠나 개별연구자들 연구 성과만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학문적 분위기, 인재의 양성과 공정한 선발이었다. 그중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다. "학생들의 학력 평가는 결코 학생들 사이의 경쟁을 부추기는 일이 아니며, 정확한 학력 측정과 인재선발을 위하여 꼭 필요한 일이다. 시험문제 출제자들은 학생들을 적으로 간주하여 매복 기습 공격하듯 함정문제를 출제하지 말고 학력향상과 인재선발에 도움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2023년 대한민국의 현실에 적용하여도 손색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안타깝다.

중국의 과학기술 발전을 중심으로 한 현대화계획에서 가장 중요시된 것은 선진 과학기술을 가진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과학기술인력이 국제적 표준에 맞는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카터-덩샤오핑 회담으로 중국의 우수한 인재 수천 명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과학기술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오늘날 중국과학기술과 첨단 산업의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로써 중국 대학의 중심은 대자보와 현수막의 광장으로부터 연구실과 실험실과 강의실로 옮겨왔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이미 반세기 전에 중국에서 불던 반과학, 반지식의 광풍이 불고 있다. 중국은 문화혁명으로 후퇴하였던 10년을 과학기술의 발전을 핵심으로 하는 미래전략으로 극복하여 G2로 성장하였다. 반면 우리나라는 지난 15년 동안 광우병선동, 천안함 괴담에 이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 오염처리수 방류에 이르기까지 모략과 억측의 저열한 여론전이 그치지 않고 있다. 급기야 국제기구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발표한 보고서를 뚜렷한 근거 없이 비판하면서 그 수장을 공항에서 감금하다시피 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올림픽 경기의 심판 판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IOC 위원장을 겁박하는 것과 같은 행태이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최근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 방한 당시 입국 반대 시위가 벌어진 것을 두고 "한국의 위상을 크게 추락시키는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진영논리에 장악된 담론이 과학적 담론을 압도하고 있다.  이는 정치적 불안을 야기하고 학문의 쇠퇴, 경제의 후퇴와 더불어 신뢰사회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 국격의 손상은 물론이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운신할 폭을 줄이고 있다. 과학이 미신을 극복한 오늘의 한국에서 사이버 세계와 '공영방송'의 주술(呪術)이 실시간으로 전파되어 과학적 결론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우세한 언론을 동원하여 괴담과 모략으로 정부의 정상적인 외교와 국책사업을 공격하면 당장은 여론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위험사회에서는 위험 커뮤니케이션(risk communication)으로 대응해야 한다. 

중국은 문화혁명 과정에서 온 나라에 손상을 입힌 무정부주의적 파괴행위를 극복하고 사회주의국가 건설에 매진하여 비약적 성장을 이루었다. 우리나라도 괴담의 확대전파에 휘둘리는 유치한 정치에서 벗어나, 사실에 기반한 공론의 장을 확대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발전을 위한 사회적 연대를 이루어야 한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