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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진 칼럼] 구멍 뚫린 투개표 시스템, 과연 이대로 좋은가

[윤용진 칼럼] 구멍 뚫린 투개표 시스템, 과연 이대로 좋은가

기사승인 2023. 08. 1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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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실한 선거제도 개혁 <4>
윤용진 변호사
대한민국 국민들은 대한민국이 단기간에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뤄낸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선거 시스템에 대해서도 신뢰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한민국 선거 시스템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근본적으로 무너져 내리게 된 사건이 있었으니, 이른바 '소쿠리 투표 사태'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우리의 소중한 한 표가 소쿠리나 상자에 담겨져 있는 광경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지만, 허술한 대한민국 투개표 시스템에 대해 깊은 우려와 함께 시스템 개선을 촉구해 온 사람들에게는 소쿠리 투표 사태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여전히 대한민국 투개표 시스템의 문제점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국민들에게 현행 투개표 시스템에 관한 놀라운 사실 몇 가지를 알려드리고자 한다.

◇ 전자개표기는 믿을 수 있나?
키르기스스탄, 이라크, 콩고 등 한국산 전자개표기를 사용한 여러 나라가 부정선거 시비에 휘말렸고, 키르기스스탄에서는 부정선거로 대통령이 하야했다.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콩고 선거에 한국산 전자투표기를 사용하지 말라고 공개 경고까지 한 바 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전자투표기 사용을 위헌으로 선언하고, 프랑스, 네덜란드 등 여러 유럽 선진국들이 수개표를 고수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총선 당시 충남 부여 개표장에서 전자개표기가 심각하게 오류를 보여 언론에 보도된 것을 비롯해 전자개표기가 오작동한 사례는 계속해서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굳이 말 많고 탈 많은 전자개표기를 사용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당장 수개표로 전환하는 것이 마땅하다.

◇ 사전투표함은 안전하게 보관되고 있나?
사전투표일과 본투표 후 개표 시까지 사이에 4~5일의 공백이 있다. 원칙인 본투표 기간이 하루인데 예외적 투표인 사전투표 기간이 이틀이고 그 사이에 4~5일의 공백이 있다는 것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그 기간 동안 사전투표함은 한 치의 의구심이 없을 정도로 투명하게 보관되어야 하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특히 선관위는 관외사전투표함 보관실에 CCTV를 설치해 달라는 요구를 거부한 바 있고, 작년 대선과 지선에서도 사전투표함 보관실에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거나, CCTV를 가린 채로 보관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어 국민의 공분을 산 바 있다. CCTV를 설치한다고 해도 사후 조작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사전투표함 보관실 CCTV를 실시간으로 국민들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감시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것이 마땅하다.

◇ 투표지에 찍힌 투표관리관 도장은 문제없나?
공직선거법은 투표지의 사후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투표지에 투표관리관의 사인(개인 도장)을 날인하라"고 명확하게 규정하고 있음에도 현재 사전투표지는 투표관리관 날인을 '인쇄날인(도장 모양이 투표지에 그려져 출력됨)'으로 갈음하고 있고, 당일 투표지는 선관위가 일률적으로 자체 제작한 도장을 투표관리관에게 교부하여 투표지에 날인하게 한 후 이를 수거하고 있는바, 이는 실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투표지의 사후 위조 여부가 문제되었을 때, 투표관리관이 투표지에 날인된 인영이 자신의 사인으로 날인한 그 인영이 맞는지 그 진위여부를 판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일방이 상대방 이름으로 도장을 만들어 상대방에게 교부하여 이를 날인하게 한 후 수거해 가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지금부터라도 공직선거법에 따라 투표관리관의 도장은 반드시 사인(인감도장)을 사용해야 한다.

◇ 특수 봉인지는 믿을 수 있나?
예전에는 투표참관인들이 투표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후, 투표함의 임의 개봉을 방지하기 위해 투표함에 종이(한지)를 붙여 밀봉하고 그 위에 자필서명을 하였는데, 현재는 종이 대신 파란색 비닐 유사 재질의 이른바 특수 봉인지를 사용하고 있다. 선관위는 이 특수 봉인지를 부착 후 떼어낼 경우 떼어냈다는 마크가 투표함과 봉인지에 나타나기 때문에 임의로 떼어내고 투표함을 개봉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공무원 입회하의 실험에서 특수 봉인지를 일정한 방법으로 떼어낼 경우 떼어냈다는 마크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 영상이 공개되어 있다. 지금부터라도 예전 방식으로 종이(한지)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굳이 정체도 불분명한 특수 봉인지라는 것을 사용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 사전투표 참관인이 개표 전에 투표함의 본인 서명을 확인하는 절차가 없다?
사전투표함에 자필 서명을 한 사전투표 참관인이 본투표 종료 후 개표가 시작되기 전 사전투표함 봉인지 서명의 진위를 확인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전투표 참관인이 개표 시작 전 봉인지상 본인의 서명이 위조된 것은 아닌지 확인하는 절차가 없다.

작년 대선 대구 남구 개표장에서는 동일한 필체로 투표참관인 5인의 서명이 된 사전투표함이 발견되었고, 그 경위를 확인하기 위해 집에 있는 사전투표 참관인들을 부르는 소동이 벌어진 바 있다(투표관리관인 공무원이 직원에게 대필을 지시한 것으로 인정함). 지금부터라도 개표 시작 전에 반드시 사전투표 참관인이 투표함 상의 본인 서명이 위조되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할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투개표를 공정하게 실시하고 투표지의 사후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공직선거법이 최소한으로 마련해 둔 장치들조차 사실상 무력화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줄줄 새는 바가지 같은 현행 투개표 시스템으로 나라의 명운이 걸린 중차대한 선거를 계속 치러도 되는 것인가.

선거는 민주주의의 심장과도 같다. 선거가 한 치의 의구심도 남기지 아니하도록 투명하고 공정하게 치러질 때에만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계속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취지에서 정치권과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투개표 시스템 정비에 나서 줄 것을 간곡하게 촉구한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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