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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자유주의(Liberalism)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특별기고] 자유주의(Liberalism)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기사승인 2023. 08. 2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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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학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
한 세대 전 냉전의 종식은 공산주의의 폭정과 마르크시즘의 족쇄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켰다. 그것은 근대 자유주의(Modern Liberalism)의 빛나는 승리였다. 지난 반세기가 넘는 기간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자유주의가 어떻게 전체주의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것인가였다. 개인주의적이고, 다원주의적이며, 평화주의적이고, 그리고 사적인 즐거움과 국내적 평온에 몰두하는 자유·민주적 사회가 집단주의적이고, 군국주의적이며, 권력과 정복을 위해 동원된 적에 대항하여 승리할 수 있을까였다. 나치즘의 패배와 소련제국의 몰락은 전체주의가 억압적이고 살인적일 뿐만 아니라 그것이 비효율적이고 치명적이고 취약하다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입증했다.

이제 우리는 또 다른 문제에 직면했다. 이제 문제는 자유주의가 전체주의에 대항하여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스피노자, 로크와 칸트의 근대의 전통적 자유주의가 그 자체로부터, 즉 자유주의가 그 자체의 위약함과 과잉에 대항하여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가이다. 이 문제는 정치적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도덕적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자유주의의 정신이다. 그것은 새로운 문제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적어도 19세기의 고전적 자유주의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때문이다. 만일 그 문제가 고전적 자유주의에 내재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나, 소비자중심의 자본주의, 혹은 탈공업사회에 특이한 일탈이 아니다. 이런 환경이 그것을 악화시켰을지는 몰라도 그러나 그것들이 그것을 창조하지는 않았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오래전에 수립된 자유주의 전통을 가진 국가들뿐만 아니라 탈냉전 이후 수립된 동유럽의 민주국가들을 포함하여 모든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걱정거리다.

고전적 자유주의에 관한 고전적 교과서는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자유론>(On Liberty)이다. 이 책은 자신을 고전적 자유주의의 진정한 후계자라고 간주하는 이제 자유의지론적 보수주의(a libertarian conservatism)의 고전적 교과서다. 그것은 동시에 진정한 자유주의의 목적을 수행한다고 내세우는 적어도 특수한 급진주의 학파의 급진주의에 관한 고전적 교과서이기도 하다. 요컨대 그것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아이디어와 태도에 지적 권위와 정당성을 부여하는 근대의 아이콘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밀의 시대보다 오히려 오늘날 더 적실성이 있다.

<자유론>의 첫 페이지는 자유의 문제가 더 이상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즉 억압받는 인민들에 대한 임의적 의지를 강요하는 "정치적 폭정(a political tyranny)"에 대항하는 투쟁이 아니다. 그 문제는 적어도 보다 선진된 국가들, 그리고 잠재적으로 성숙된 문명의 수준에 도달한 모든 다른 국가에서 인민주권 정부의 수립으로 해결되었다고 밀은 우리에게 확언한다. 지금 자유가 직면하는 문제는 새로운 형태의 폭정, 즉 개인에 대해 대중이 행사하는 "사회적 폭정(a social tyranny)"이다. <자유론>의 첫 문장은 "시민 혹은 사회적 자유"라는 주제를 발표하고, 그 영역을 "개인들에 대해 사회에 의해서 정당하게 행사되는 권력의 성격과 한계"라 정의한다. 그 주제의 장엄성은 그것의 핵심인 "하나의 아주 간단한 원칙"을 훨씬 더 드라마틱하게 만든다. "그 원칙은 자기 보호이다." 문명사회의 모든 구성원에 대해 자기의 의지에 반해 올바르게 행사되는 권력의 유일한 목적은 타인들에게 대한 해(害)를 예방하는 것이다. 물리적이거나 도덕적이거나 자기 자신의 선(善)이 충분한 보증서는 아니다. 오직 자신에게만 관련된 부분에서 인간의 독립성은 절대적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즉 자신의 몸과 마음에 대해서만 개인은 주권자다.

이런 원칙은 개인과 사회 사이에서 급진적 괴리를 가리킨다. 즉 모든 긍정적이고 명예로운 속성들이 부여된 개인과 부정적이고 경멸적인 속성을 가진 사회 사이의 적대관계를 가리킨다. 그리하여 개인은 자유와 의지를 부여받고 그 자신의 선은 전적으로 자신의 관심이다. 그의 독립성은 절대적이고 그는 주권자다. 반면에 사회는 강제, 통제, 강요, 억압, 간섭, 즉 폭정의 방식으로 행동한다. 이런 부정적인 성질은 사회가 법적 처벌의 형태로 물리력의 수단으로 행동하든 아니면 여론의 도덕적 강압에 의해서 행동하든 사회에 적용된다. 사회가 정당하게 간섭하는 환경에서조차 그것의 목적은 부정적이다. 즉 그것은 타인들에 대한 해나 악을 막는 것이다. 사회는 명시적으로 긍정적이거나 바람직한 어떤 것, 개인의 선을 넓히거나 혹은 그를 더 낫게 하거나 혹은 행복하게 하거나 혹은 사회가 현명하거나 옳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것도 행하는 것을 금지한다.

하나의 아주 간단한 원칙이, 생각하고 표현하는 영역, 그리고 행동과 개인들의 결합의 영역을 지배한다고 밀은 말한다.  어떤 나라가 자유로운지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체제가 아니라 바로 이 원칙이다. 이런 자유들이 전반적으로 존중되지 않는 어떤 사회도 자유롭지 않다. 행동의 자유는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오직 한 단계 덜 절대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타인에 대한 해(害)의 조건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그것만 아니라면 그것은 개성이 그 자체로서 절대적 선이기 때문에 침범할 수 없다. 토론의 자유가 실수의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에조차 토론의 자유는 그 자체로서 좋은 것과 꼭 마찬가지로 개인의 삶의 계획이나 삶의 실험이 현저하게 좋지 않거나 혹은 심지어 나쁜 경우에도 개성 그 자체는 좋은 것이다. 

그리하여 <자유론>이 법(法)뿐만 아니라 사회의 비공식적 관습의 작동을 통한 그 어떤 통제도 얼마나 부인하고 있는지가 항상 감지되고 있지는 않다. 밀은 사회적 및 도덕적 제재들이 법과 물리적 제재만큼이나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주장한다. 개인들은 타인들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한 물리적이나 도덕적 방해 없이 그들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행동해야 한다. 사회적 제재는 개인의 행동이 타인들에게는 해롭지만 그러나 법적으로 타인의 권리를 위반하지 않을 때 요구된다. 이 경우에 위반자는 비록 법을 통해서는 아니지만 여론에 의해서 정당하게 처벌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의 행위가 오직 그 사람 자신에게만 영향을 미칠 때에는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법적이고 사회적인 완벽한 자유를 갖는다.

오늘날 자유주의의 패러독스들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도덕적 문제에서는 밀이 원했던 것처럼 점점 더 자유의지적(libertarian), 즉 자유의 절대화로 가는 것과 동시에 경제적 영역에서는 점점 더 계획경제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도덕적인 영역에서 개인은 절대적 주권자에 가깝다. 그러나 경제적인 영역에서는 국가가, 밀이 그렇게 두려워했던 "사회적 폭정"과 적어도 같은 정도의 통제력을 행사하고 있다. 19세기 자유방임 자유주의와 20세기 사회복지 자유주의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공산주의의 몰락과 사회주의의 불신으로 오랜 세월 공세적이던 사회복지 자유주의가 이제는 아주 수세적이 되었다. 이 두 자유주의 간의 구별은 진실이고 중요하게 되었다. 그리고 도덕적인 영역과 경제적인 영역의 사이에서 오늘날 자유주의 내부의 괴리도 못지않게 진실이고 중요하다. 

밀의 자유에 대한 하나의 간단한 원칙은 다른 복잡한 원칙들에 비해서 언제나 유혹적이다. 그것은 현대의 해방된 자치(自治)적인 진정한 개인의 이미지에 부합하기에 더욱더 호소력을 갖는다. 자유 그 자체가 위험할 때 즉, 위기의 시기에 특별히 압도적이다. 공산주의와 나치즘이 부상할 때 많은 자유주의자들은 절대적 전체주의 체제에 대항하여 유일한 안전은 절대적 자유의 원칙이라고 믿게 되었다. 

자유주의자들은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것을 항상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해방된 체코슬로바키아의 전 대통령 바클라프 하벨(Vaclav Havel)은 자유 그 자체의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관해서 성찰하면서 자유가 공산주의 폭정으로부터 자기 동포들을 해방시키려 할 뿐만 아니라 도덕의 제약으로부터 해방시키려 위협한다고 말했다. 하벨처럼 우리는 지금 절대적 자유도 역시 절대적으로 부패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있다. 전통과 인습으로부터 단절된 절대적 자유란 자유주의 자체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다. 그것은 우리가 이제는 모든 것이 상대적이고 또 가능하다는 허무주의(nihilism)에 빠져, 도덕적으로 갈 때까지 간 니체의 소위 "마지막 인간(the Last Man)"이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강성학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본란의 기고는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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